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칭찬 아끼지 말아야해
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칭찬 아끼지 말아야해
  • 관리자
  • 승인 2006.04.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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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수필가·본지칼럼리스트)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있다.

 나이가 자신보다 조금 적다고 하여 생각이나 행동마저 모든 게 다 미숙하다거나 경솔함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한참 imf다 뭐다 해서 각 가정마다 한차례 회오리바람을 몰고 오던 90년대 말 ...

 

이른 아침의 미팅은 오늘따라 사뭇 다르다.

바로 설날이 며칠 안 남아서인가?

대화하는 선생님들의 얘기는 온통 이 설날..을 잘 나기, 에 관 해서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집집마다 '돈' 걱정은 끊이질 않는다.

교재가 도착했다고 사무실 여직원이 귀뜸을 해준다.

어떤 사람은 들은 척 만 척 가만히 학생들의 교재 채점을 계속하며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그러는 반면에 그 얘기를 듣자마자, 쪼르르 엘리베이터 앞으로 몰려드는 이들도 더러 있다.

나도 그 엘리베이터 앞의 한 사람들 속에 서 있으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어 선생님 벌써 가지고 올라오는 거에요?'

'네..아직 몇 번 더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번엔 교재 박스가 지난주보다 더 많아요. 설날이 끼여서 그런가봐요.'

이렇게 말을 하는 그녀의 이마에선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다.

겨울인데도 제법 더위를 탄다는 그녀의 말이 새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땀방울 속에서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예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그녀는 항상 그러했다.

아침 모닝커피를 마실 때도 누가 아직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늘 다른 이들을 먼저 챙기는 배려하는 마음씨를 가졌다.

그러다가 내려놓은 커피가(커피뽑아) 모자랄 때엔 다른 이들은 그저 커피 마시기를 포기하는 게 예사인데도(시간이 걸리니) 그녀는 생수를 넣고 커피가루를 넣고...이렇게 커피 내리는 일엔 늘 먼저 솔선수범 한다. 사무실 여직원이 있어도.

커피가 다 내려졌을 때쯤엔 내려놓은 커피가 모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커피 한 잔, 이젠 자기 잔을 챙겨놓을 법도 한데 새로 출근하여 몸이 얼어붙은 다른 선생님들의 잔을 채워주는 일에 또 바쁜 그녀.

그러다가 수업을 나갈 때까지 커피 한 잔 못 챙겨먹을 때가 아주 빈번한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니겠는가?

 

커피와 관계된 모습은 빙산(氷山)의 일각(一角).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그 일 자체보다 학부모들과의 상담이라든지, 교재비에 관하여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우리들에겐 사무실 속에서만큼은 제법 무뚝뚝한 표정이 참 많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항상 미소로 환하다.

아주 이따금은 '김 선생님'

이렇게 내가 그녀를 불러본다. 그러면..그녀는..

'네..? 왜요? 이 선생님?'

 

그러며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며 무슨 일로 그러한지 궁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면 나는 또 '그냥,..예뻐서..'

 

예뻐서 한번 불러봤다는 내 얘기에, 실없는 장난 한번 쳐본 나를 정답게 마주보며 또 웃는다.

그러는 그녀의 미소가 참 보기좋다.

찌들리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 표정을 보다가도 그녀의 이런 싱그런 미소는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엘리베이터로 교재를 가지고 운반을 하는 일이 이제 다 끝나고 다들 서로 '수고했어요' 라는 인사와 함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을 때, 먼저 솔선수범(率先垂範)하여 교재 나르기를 자청하던 그녀의 모습이 그런데, 눈에 띄지 않는다.

화장실에 갔으려니,..

이제 벌써 첫 수업이 있을 시간이 다가오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섰을 무렵,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설날 잘 보내세요, 아저씨.'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 쪽에서 나는 소리.

아저씨라고 그녀가 부르는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교재를 배달해주는 운송책임자 아저씨.

그 아저씨, '아니 괜찮아요. 미안해서 어쩌나요?'

이런 말들을 계속 하고..그러는 그 아저씨에게 '큰 것도 아닌걸요. 명절 선물이 너무 작아서 죄송해요.'

 

자기 가족 챙기기에 급급하여 명절이 다가와도 주위를 돌아보아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이에게까지 손을 뻗쳐 정성을 보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선물이란 것이 나이가 들수록 으레 의무적으로 인사치레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속에서 마음은 있으되 행동으로 나설 때도 드물고.

일 년 열두 달 가봐야 그 교재를 운반해주는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거라곤 일주일에 고작 한 번.

그것도 교재 나르는 일을 도와주지 않는 선생님들의 경우엔 그 아저씨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 지, 목소리가 어떠한 지 전혀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고.

 

명절 며칠 전의 엘리베이터 앞 계단에서의 그녀가 아무도 모르게 내게 보여준 그 모습은 지금까지 사무실에서 사람들 틈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된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이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 더 많을 테니.

 

명절(설날) 연휴가 끝나고

맨 처음 사무실에 도착한 내가 커피를 내리고 있을 즈음.

두 번째로 출근한 그녀가 이렇게 내게 인사를 한다.

'아, 오늘은 제가 일등자리를 이 선생님한테 놓쳤네요, 명절 잘 보내셨어요?'

 

그녀와 이런저런 명절에 있었던 얘기를 함께 나누며

그녀에게 늘 커피 대접을 받던 내가 이번엔,

설탕 한 스푼을 담은 뜨거운 커피 한 잔, 그녀에게 내밀어본다..

 

잔을 받아들고 웃는 모습이 예전에 내가 그녀에게서 잔을 받아들며 행복해하던 그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들 중에서

그, 그녀에게 배울 만한 그 어떤 점이라도

나보다 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칭찬함에 말을 아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후에 난 그녀를 나의 대학  남자 후배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그들은 결혼을 했다.

지금은 그들이 결혼한 지, 거의 7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나는 두 번만 더 중매하면.....천당.......간다.)

 

독서신문 1395호 [20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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