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가 유행이 돼서는 안 된다… ‘회피 사회’ 대한민국
‘득도’가 유행이 돼서는 안 된다… ‘회피 사회’ 대한민국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1.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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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작가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지난해 4월 출간된 이후 아직까지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종종 오르며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은 세상이니 마음 편히 먹고 살라.” 불혹의 나이에 득도(?)하고 회사에 사직서를 낸 하완이 이 책에서 말하려 했던 교훈 아닌 교훈은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주창하는 삶의 태도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의 것과 일견 비슷하다. 일본어 ‘사토리’란 ‘득도’라는 뜻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난 일본 청년의 사고방식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경제성장기를 체험하지 못한 이들은 마치 ‘득도’한 것처럼 돈벌이나 취업에 관심이 없다. 

한국의 청년들이 ‘득도의 경지’에 오르는 이유도 분명 있다. 주로 고충을 토로하는 세대는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즉 지금 20대 중후반 나이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앞뒤 세대보다 1년에 8만명에서 9만명 정도 더 많이 태어났다. 따라서 무엇을 하든 경쟁은 ‘낙타가 바늘구멍 뚫고 들어가기’였다. 태생부터 불리한 조건에 경기 불황까지 겹쳤으니 몸에서 사리가 나올 만하다. 이들에게 ‘노력’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노오력’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오력’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의 ‘득도’가 사회적으로 유행이라도 돼버린 걸까. 요즘은 ‘노력해도 안 돼서 안 하는 것’과 ‘노력하면 되는데도 안 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어딘가에서 ‘쉬운 다이어트’ 방법이 소개되기라도 하면 며칠간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인기검색어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올 기미를 안 보이고, 해당 다이어트가 소개된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등 그 반응이 격렬하다. 실제로 ‘쉬운 다이어트’란 없으며,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인데 말이다. 여러 책이나, 다이어트 전문가들이 가장 좋은 다이어트는 “균형 잡힌 식단 조절과 운동”이라고 말해도 이런 정보만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비만율이 36.9%로, 2015년 34.1%보다 2.8% 포인트 증가했으며, 당뇨병과 고혈압 등 비만 관련 질병 때문에 드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한 해 11조4,000억원에 달한다는 국민건강공단의 지난 12월 발표는 애초에 사회적으로 살을 빼려는 노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세태를 투영한다.  

‘금연’은 어떤가. 흡연자들은 이제 노력해서 담배를 끊으려 하기보다는 덜 해롭다고 인식되는 전자담배를 피운다. 지난해 궐련 판매량이 2017년 35억2,000만 갑에서 34억7,000만 갑으로 1.5% 감소했지만, 대신 궐련형 전자담배는 2017년 5월 출시 이후 그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3억3,000만 갑이 팔렸다. 지난해 11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간한 <금연정책포럼>에 게재된 「국가금연지원센터의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기존 궐련 흡연자가 건강문제, 담배냄새 등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대체재로 궐련형 전자담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금연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도 ‘노력하지 않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다. 

김난도 교수의 소비트렌드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 2019』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감정 이입을 통해 대신 느껴주는 ‘감정대행인’, 본인이 스스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감정대변인’, 본인의 상황에 맞는 감정을 큐레이션 해서 대신 맞춰주는 ‘감정관리인’ 등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라면 ‘득도’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회피 사회’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 지금처럼 ‘노력’의 가치가 낮아진 데는 다 이유가 있지만, 본래 진정한 ‘노력’이란 폄하의 대상이 아니다. 너도나도 ‘득도’하려는 분위기에 정작 느슨해져서는 안 될 것들이 느슨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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