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고 당하면 ‘의료 파산’... 나도 당할 수 있다
미국에서 사고 당하면 ‘의료 파산’... 나도 당할 수 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1.25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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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1년간의 캐나다 유학생활을 마치며 떠난 여행에서 큰 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대학생 박모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세금을 들여서라도 국내로 이송해야한다는 주장과 개인사정에 세금 지급은 불가하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박씨의 누적 치료비는 20여 일만에 10억원 가까이 불어난 상황이다.

박씨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단체관광을 통해 미국 애리조나주의 유명 관광지 그랜드캐년을 방문했다. 절경을 감상하며 자유 시간을 갖던 중 박씨는 수십 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박씨는 곧바로 인근 의료 기관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뇌사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추가 진료에 따른 비용 증가 부담이 크지만, 국내 이송하는 데만 2억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해 국내 이송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행사는 자유 시간에 벌어진 일로 여행객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어 모든 부담이 오롯이 박 씨에게 쏠리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의료보험체계에 있다. 우리나라가 의료보험을 의무가입으로 정해, 전 국민에게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반해 미국은 2014년 들어서야 의료보험 의무가입(오바마 케어)으로 전환했다. 미국의 의료수가(의료비 총액)는 세계최고 수준인데 지난 13일 바른의료연구소에 따르면 GDP 대비 의료수가는 미국이 17.2%로 우리나라 7.7%를 크게 웃돈다.

이전까지 미국은 메디케어(65세 이상 노령층에 의료비 50% 지원 ), 메디케이드(65세 미만 저소득층·장애인에 의료비 전액 지원 )만 국가가 운용하고 그 외에는 민간 보험사에 일임하면서 그간 미국 국민은 높은 의료비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2007년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미국인의 파산 원인 중 60%가 ‘과중한 의료비’라고 발표한 바 있다. 사랑니 한개를 뽑는 비용만 해도 2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고 당시 박씨는 유학생 보험에 가입한 상태였지만 사고 5일 전인 지난달 25일 만료돼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은 그간 영화·방송에서 자주 다뤄졌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존 큐’(John Q)에서 주인공은 심장 수술이 필요한 아들의 수술비를 얻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면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심장을 아이에게 이식하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마지막으로 아들과 만난 그는 “기회가 되면 돈도 많이 벌어. 남을 배신하더라도. 아빠처럼 멍청하게 살지 말고”라는 말을 남긴다. 2014년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배우 안재욱은 “미국에서 휴가 중 쓰러져 수술(지주막하출혈)을 받고 깨어났더니 병원비가 45만달러(약 5억원)가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 수술했을 경우에는 약 280만원 수준으로 미국과 200배가량의 차이가 나타난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핀란드에서 출생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아누 파르타넨은 책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에서 “나는 미국 의료보험 체계가 사람들을 옥죄는 불건전성을 몸소 체험했다”며 “노르딕 출신 미국 이민자로서 나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뭐냐면, 미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자기네 삶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에 관해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처럼 선진화된 사회보장제도로 국민에게 풍족한 삶을 제공하는 사례가 존재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가가 자국민의 인간다운 삶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뇌사상태에 빠진 아들과 12억원에 달하는 치료비는 이전에 많은 미국 가정이 그랬듯, ‘의료파산’을 초래하기에 충분한 ‘악재’다. 다행히 박씨가 재학 중인 대학교와 박씨가 유학했던 벤쿠버 한인사회에서 성금모금이 시작돼 300여 만원이 모였고, 항공 의료 이송 전문기업 ‘프로텍션 메드’도 ‘의료 지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씨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책 『넛지』에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넛지’를 정의 내렸듯, 세금 지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넛지’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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