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공화국’ 대한민국, “매뉴얼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
‘시스템 공화국’ 대한민국, “매뉴얼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1.24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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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출동한 경찰이 법 집행 매뉴얼과 절차에 따라 조치했다.”(암사역 흉기 난동에 대한 경찰 해명 ) “112 문자 신고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며, 긴급 보완 조치를 완료했다.”(당산역 버스 흉기 난동에 대한 경찰 해명 )

최근 잇따라 벌어진 흉기 난동을 두고 경찰 대응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시스템의 한계가 지적받고 있다. 사람을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 오히려 사람을 구속한다는 지적이 크게 일고 있다. 대체로 시스템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발생한 두 사건의 공통점은 국민 불안을 초래했지만, 치안 시스템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암사역 사건은 경찰 매뉴얼 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과잉진압 비판을 우려해 흉기를 든 10대 용의자를 제때 제압하지 못하면서 자칫 추가 인명피해를 낳을 뻔한 상황을 연출했다.

한 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경찰관이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재량껏 대처했다면 ‘과잉 진압’이나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 매뉴얼을 어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당산역 사건 역시 “(버스에서 ) 남성이 욕설을 하며 커터칼을 들고 있다. 저희가 신고한 것 모르게 해달라”는 문자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버스에 올라 ‘신고자 있느냐’고 크게 외친 후 하차하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경찰은 “(문자 신고가 ) 40자가 넘어 신고가 제대로 접수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70자까지 늘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미흡한 치안 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실 이런 시스템의 폐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다.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과 마주했던 이국종 교수는 저서 『골든아워』에서 “(우리나라는 )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구조와 시스템이 결정된다”며 “이는 오랜 군사 문화의 폐해이기도 하고, 경직된 사회 구조의 한계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체계와의 마찰이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기존 체계와 인사, 재정, 지원, 운영 모든 면에서 부딪혔다. 또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이들은 나를 주시하며 비아냥과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며 “(시스템 개선 결정권자들은) 현장의 소리를 들을 의지가 없었다. (나는 ) 문제와 대안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모든 결정은 현장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성토했다.

성추행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체육계에도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문제로 지적된다. 개인보다 국위 선양을 최우선 가치로 앞세우면서 주종관계에 익숙해진 선수들이 (성)폭력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문제 제기다. 최근 불거진 심석희 선수의 폭행 피해도 ‘때려서라도 성적을 내야 한다’는 체육계의 그릇된 관행 시스템에서 비롯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관행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뻗어 있는데, 심 선수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 조 전 코치의 경우 1심 재판부가 ‘(조 전 코치의 ) 지도를 받은 선수들의 (좋은 ) 성과’를 감형 사유로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심리학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는 저서 『소모되는 남자』에서 “시스템은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스템의 불편함을 참는다”며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시스템이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힘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김유철 작가 역시 소설 『콜24』에서 “절박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눈앞의 이익에만 신경 쓰게 만들 수 있어요.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시스템은 몰아내야 할 사회악적인 존재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사회(기관·기업)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미국 알루미늄 기업 알코아(Alcoa)의 폴 오닐 대표는 최근 사회 문제로 지목되는 ‘위험의 외주화’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한 좋은 사례로 꼽힌다.

찰스 두히그의 책 『습관의 힘』에 따르면 오닐은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만 승진시켰다. 부상자가 발생하면 부서장이 24시간 내에 오닐에게 보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계획서를 제출하게 했다. 반면 책임자가 안전 수칙을 어기면 말단 직원이라도 대표에게 직접 전화해서 보고하게 했다. 이와 관련해 찰스 두히그는 “(부서책임자는 ) 산재 발생 후 24시간 내에 보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사고 발생 즉시 사고에 대한 내용을 들어야 했다”며 “책임자들은 현장 관리자들과 끊임없이 접촉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위험 징후가 보이면 곧바로 알리라고 독려하고, 그들의 제안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관해야 했다”고 말했다. 권한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면서 선순환적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덕분에 알코아의 수익은 크게 증가해, 주택용 알루미늄 패널 공장의 경우 수익이 두 배가 오르기도 했다.

폴 오닐이 만든 시스템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그는 알코아의 대표 자리에 오른 지 6개월이 지난 무렵,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우리가 그 청년을 죽인 겁니다. 제 리더십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지휘 계통에 있는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라며 통탄했다. 시스템과 매뉴얼을 들먹이며 ‘하청 기업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국종 교수가 “(의료 시스템 구축에 있어 ) '돈'과 '경제 논리'보다는 '사람'이 먼저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시스템의 존재 목적이 ‘돈과 편의’인지 ‘사람’인지 분명한 인식확립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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