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이제는 볼 수 없는” 우체부·전신·전화의 기록
[포토인북] “이제는 볼 수 없는” 우체부·전신·전화의 기록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1.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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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책의 저자 이봉재 정보통신사료 수집 및 연구가는 20년 전 우연히 고물상 앞에 쓰러져 있는 공중전화를 보고 “공중전화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공중전화를 집으로 가져온 그는 그때부터 사라져버린 근대 통신의 역사에 주목해 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근대 통신역사를 정리한 드문 자료이기에 가치 있다.  

[사진제공= 진한M&B] 

한국우정의 선구자 홍영식(1855~1884). 우리나라에서 우편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 처음 개설된 것은 일본에 의해서였다. 일본은 1876년 11월 1일 부산일본거류민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다는 구실로 ‘부산일본제국우편국’을 개설했다. 근대적 우편업무와 전신업무가 최초로 우리나라 관제에 포함된 것은 1882년 통리아문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개편하고 여기에 우정사 등 4사와 동문학(同文學)을 신설하고 각 부서 책임자들을 임명하면서부터다. ‘승정원일기’에는 1883년 목인덕(뮐렌도르프)을 통리교섭통상사무 참의 겸 협판에 임명하고 홍영식 또한 협판에 임명했다고 기록돼있다. 

[사진제공= 진한M&B] 

삽화는 1883년 8월 18일 주미전권사신(보빙사) 일행이 뉴욕에 체재 중이던 미국 대통령 체스터 A. 아서와 국서(國書) 전달을 위한 회동시 조선식 전통 예법을 거행하는 모습이다. 해당 삽화는 미국의 한 신문에 실렸다. 

[사진제공= 진한M&B] 

위 사진이 표기된 엽서는 일본에서 발행됐으며, 하단에 ‘구우체부’(舊郵遞夫)라고 적혀있다. ‘구한국우편집배인’이라는 의미다. 머리에는 갈모(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우장)를 쓰고 우비를 입었으며 우편가방을 매고 있다.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담뱃대를 들고 있다. 정규복장을 하고 있었던 중앙의 체전부(우체부)들과 달리 지역의 일부 체전부들은 평상복을 착용하고 근무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제공= 진한M&B] 

고종과 신하의 전화통화 모습을 재현한 상상도. 함흥과 영흥으로 떠나는 신하들이 고종에게 수시로 보고하기 어려운 점을 토로하자 고종이 “마땅히 전화과 주사가 기계를 가지고 동행해야 할 것이니, 전화로 먼저 아뢰면 필경 빠를 것이다”라고 한 것이 고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문헌에 따른 근대통신(우체·전신·전화) 역사』
이봉재 지음│진한M&B 펴냄│283쪽│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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