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의사’ 임세원의 죽음, 제대로 기리려면... “WHY보다 HOW에 집중해야”
‘참 의사’ 임세원의 죽음, 제대로 기리려면... “WHY보다 HOW에 집중해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1.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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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어 자칫 강력사건의 피해자로만 기억될 뻔했던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보다 주변인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살아생전 환자들을 살뜰히 보살폈던 그의 발자취와 남겨진 가족의 기품 있는 모습은 이 시대가 잃은 ‘참 의사’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곳’이란 감동을 함께 선사한다.

지난 20일에는 임 교수 유족이 대한정신건강재단에 1억원의 기부금을 전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감동을 자아냈다.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금을 전한 유족은 “기부를 통해 안전한 진료 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고인의 유지였다”며 “이를 위해 기부하는 것이 고인을 우리 곁에 살아있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기부 취지를 밝혔다.

한 달이 지나도록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임 교수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일으킨 파장의 면면을 분석해본다.

‘나’보다는 ‘남’... 돋보인 ‘배려심’

임 교수는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자신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 부위를 수차례 찔려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당시 위기상황을 회피할 여력이 있었음에도 간호사들의 안위를 챙기다가 변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공개된 CCTV에 따르면 도망칠 시간이 충분했지만, 간호사들 쪽으로 수차례 뒤를 돌아보며 대피 상황을 확인하다가 정작 자신은 위험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살신성인적인 자세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임 교수의 죽음이 누구보다 가슴 아플 유족의 ‘배려심’도 감동의 깊이를 더했다. 유족은 누군가에게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거나 자신들이 겪는 아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조문객에게 감사를 전하고 그간 고인이 돌봤던 ‘마음의 고통 있는 분들’의 안위를 더 걱정했다.

유족은 “많은 분이 새해를 맞는 기쁨의 순간 바쁜 시간을 쪼개어 빈소를 찾아주시거나 멀리서나마 애도와 위로를 전해주셨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이번 일은 의료진뿐만 아니라) 나아가 위험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모든 분의 안전을 살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고인은 평소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 말씀하셨다"며 "고인의 뜻이 저희 유족과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해주신 분들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장 상처가 컸을 유족이 오히려 대중을 위로하고 고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고인이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은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지만, 불행은 그럴 수 없다. 아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힘들어도 우울감에서 빠져 자신을 잃어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듯, 유족은 고인의 생전 가르침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의사... 임세원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 임 교수가 환자를 대하면서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이다. 한때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3년간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난 후 비로소 그 말을 이해했고, 그렇게 환자를 공감할 수 있는 의사로 거듭났다.

임 교수는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병에 관한 ) 진단과 해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감’일 것”이라며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내가 과연 그런 존재였는지 되돌아보게 됐고, 이제 나는 최소한 ‘저도 그 병, 잘 알아요’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 스스로 저서에 밝혔듯 그는 “환자로부터 배우며, 환자를 위해 배우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춘 의사였다.

실제로 임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을 접한 많은 환자가 고인의 빈소를 찾았고, 누군가는 “진료 끝나면 꼭 따라 나오셔서 ‘좋은 날로 예약해드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하고 들어가시고, 그 정도로 자상하셨다”며 임 교수의 사람 됨됨이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왜’ 보다는 ‘어떻게’에 집중... 임세원법 21개 발의

“(불행을 마주한 상황에서는) ‘왜’ 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해야 한다”고 임 교수가 주장했듯이 이번 사건을 두고 정신질환을 앓는 가해자를 향해 “왜 죽였냐”고 비난하기보다는 국가가 어떻게 정신질환자를 관리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구축할지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임 교수 사망 이후 11개 법안이 추가돼 총 21개의 임세원 법안이 발의됐다. 의료인 폭행 시 가중처벌,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음주감면 배제 등 강도 높아진 처벌 규정도 눈에 띈다. 합의하면 처벌을 면한다거나 음주를 이유로 처벌받지 못하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봉쇄하자는 것이다.

임 교수의 죽음이 안타까움을 더하는 가운데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참 의사’를 또 잃기 전에 확실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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