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이혼 후 몸부림 치는 남자의 삶… 아내에게 보낸 편지
[책 속 명문장] 이혼 후 몸부림 치는 남자의 삶… 아내에게 보낸 편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1.22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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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할머니의 편지
사랑하는 손자야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우울한 감정이 공격해 들어오더구나, 아무튼 이 모든 게 나폴레옹의 잘못인 건 분명해, 이런 말을 고백하는 건 너무 괴롭지만, 그래도 난 나폴레옹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의 새로운 삶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진 않은지 너무 궁금하단다. 나폴레옹은 설령 아무리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내게 말을 안 할 사람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나폴레옹은 내 삶의 유일한 태양이었어, 비록 지금은 지는 태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열기를 갖고 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는 여전히 발바닥에 모래알이 느껴지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옛날이랑 똑같이 말이야, 있잖니,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란다, 사람이 늙으면 이해할 수 있는 건 겨우 그것뿐인가 봐, 솔직히 말해서 내 사랑하는 손자야 마음의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하구나, 너무 복잡해, 최악이 뭔지 아니?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마음의 문제들을 점점 더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309~310쪽>

레오나르의 편지 
할머니께, 

지난주에 있었던 아주 심각한 일 때문에 할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를 읽기 전에 우선 자리에 앉아주세요. 그리고 할머니의 타피스리를 잠깐 손에서 내려놓아 주세요. 타피스리를 방금 끝냈더라도, 열 줄 정도를 풀어주세요. 할머니, 우린 아직도 할머니가 필요해요. 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노라고 나폴레옹에게 맹세했었어요. 하지만 할머니에겐 꼭 해야겠어요. 왜냐하면 나폴레옹이 이젠 예전의 나폴레옹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할아버지는 너무 여위고 주름이 져서 마치 다림질하지 않은 구겨진 시트 같아요. 풍성하고 아름답던 머리카락도 너무 하얘졌고 머리숱도 얼마나 많이 빠졌는지 몰라요. 두개골이 훤히 보일 정도지요. 할아버지가 우리 세상을 떠나 전혀 딴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들이 종종 있어요. 그럴 때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요. 엄마는 그걸 '생명의 베네치아로 떠났다'고 말해요. 그곳은 시간 밖에서 떠다니고 너무나 고요하고 따뜻하고 광대한 미로 속에서 헤매는 곳이니까요. <344~345쪽> 

나폴레옹의 편지

새로운 삶, 그건 완전히 망쳤소, 나의 조제핀. 당신과 이혼을 하고, 당신을 집에서 나가게 한 것을 사과하고. 이 모든 것은 마지막 전투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소. 난 늙는다는 건, 더는 원치 않는 것, 그저 빌어먹을 하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소.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전혀 먹혀들지 않더군. 적군은 너무 강했소,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소. 그리고 심판도 매수당했소.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겠지만, 내 두 주먹은 이제 아무런 힘도 없고, 펀치도 없고, 다리 근육은 물렁거리오. 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싸웠소, 하지만 이젠 그럴 뜻조차 내게서 떠났구려. 난 더 오랫동안 버티지 못할 거요. 난 많이 누워 있고, 대화도 많이 할 수 없소. 그리고 멋지던 머리카락도 거의 다 빠졌소. 그건 상관없소, 아직도 내 머리를 쓰다듬던 당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도 하나 빠졌는데, 희미한 미소라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내게 남은 거라곤 당신을 보고 싶다는 소망과 내 남은 삶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오. 만일 당신이 온다면, 당신은 나와 시트를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소. 나는 그 밑에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기 바라오. 놀라지 않도록 하시오.<369~370쪽>


『연약한 것은 아름답다』
파스칼 뤼테르 지음 | 김주경 옮김 | 우리나비 펴냄|400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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