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출판계의 신화
살아있는 출판계의 신화
  • 관리자
  • 승인 2006.04.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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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정진숙회장


 

■ 광복의 감격을 기리며 출발한 을유문화사
 

1945년 을유년 광복의 감격과 의의를 기리며 출판은 곧 건국사업이라는 원대한 포부로 출판계에 발을 내디딘 후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국내 대표출판사인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는 그가 앞장서 차린 출판사는 아니었다.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민병도씨, 아동문학가 윤석중씨, 명편집자로 성가를 올리던 조풍연씨가 발기했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 당시 은행원으로 이재에 능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살림꾼’이 되어 차린 출판사였다.

 “돈벌려고 시작했던 것이 아니고 일본에게 빼앗겼던 우리말, 우리글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것이 벌써 60년이 되었어.” 한국 출판계의 살아있는 신화, 최고령 현역으로 불리는 을유문화사 정진숙회장의 말이다.

 동일은행(지금 조흥은행) 행원 생활을 마감한 당시 서른넷의 정진숙을 비롯한 동인들은 문화의 황무지였던 해방공간에서 출판을 통해 일제의 강점으로 잃었던 우리 겨레의 정신을 회복시키자는 데 뜻을 같이하고 서울 종로 2가 영보빌딩에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하여 도서출판과 더불어 대대적인 문화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아동문화의 선도적 창달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첫 발걸음은 1946년 이각경의 한글 글씨 교본 <가정글씨체첩>이었고, 시인 정지용의 <지용시선>, 박목월·박두진·조지훈 3인의 <청록집>, 신석초의 <석초시집> 등 민족시인들의 시집, 한국 근대 역사 소설의 최고봉 <임꺽정>, 을유의 대표적 학술총서인 <조선문화총서>등을 간행했다.

 

■ 한국출판의 금자탑 <조선말큰사전>발간
 

한국전쟁의 여파는 을유문화사의 운영체제에도 변화를 가져와 피난지 부산에서 4인의 동인체제가 와해되고 정진숙 대표 단독체제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시기에는 양서의 대중화를 위해 발간되어 국내 문고판의 효시가 된<을유문고>, 학술문화 풍토에 새바람을 일으킨 학술잡지 <학풍> 등 국학 관련 출판이 의욕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1947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해 첫 권이 출간된 이래 한국전쟁으로 지체되었다가 1957년 완간된 <조선말큰사전>은 우리나라 출판사상 초유의 업적이자 을유를 대표하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7권으로 완간된 <큰사전>은 식민지 시절, 우리말을 보존하여 겨레의 넋을 잃지 않고자 조선어학회와 함께 발간이 기획되었고, 편찬과정 또한 민족의 수난사와 아픔을 같이하며 완성되었기에 한국출판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질 만큼 국내 최대의 저작이기 때문이다.
 

■ 진단학회와 손잡고 <한국사>간행
 

 1953년 서울 환도에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을유문화사는 관철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는데, 이때 출간된 <세계문학전집>과 <한국사>가 종로시대와 관철동 시대를 연결하는 시발점이다.

 진단학회 주도로 1959년부터 1965년에 걸쳐 간행된 <한국사>는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의 방대한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저작이었다. <세계문학전집> 역시 치밀한 기획과 꼼꼼한 번역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문학전집으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비전문가에 의한 일어판의 중역(重譯)이 기승을 부리던 이 시기에 우리 번역문화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제정된 ‘을유번역문학상’은 을유문화사가 당대 출판문화운동의 구심점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3년 수송동에 새롭게 터전을 마련하였을 당시 검인정 교과서 파동 등으로 경영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유능한 저자 발굴과 신간활동을 왕성히 함으로써 1975년 창립 30주년을 기점으로 신장판 <세계문학전집>의 발간과 <을유문고>의 200권 돌파 등 창립이래 가장 많은 종수의 신간을 발행했다.

 1980년대에는 외판 전집물에서 단행본 시대로 진입하여 세계 문단에서 주목받는 참신하고 전위적인 작가의 최신작만을 엄선하여 <해외걸작선>과 한국영어영문학회와 손잡고 그간의 성과를 총결산한다는 의미에서 <영미어문학대계>의 출간을 시작했으며 인류 문명사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은 바 있는 니담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등을 발간하여 단행본 출판에도 전력했다.

 

■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을유문화사

 이에 1990년대를 거쳐 최근에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가운데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집중 조명한 <현대사회학>, 국제정치학 분야의 종합적인 개론서인 <세계정치론>, 새로운 경제 경영서의 고전을 표방해 기획한 <positioning>, <the one page proposal>과 같은 도서들을 출간했다.

 또한 고전을 현대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지성의 향연 <을유세계사상고전>시리즈, 위대한 인간과 예술세계로의 오디세이 <현대 예술의 거장>시리즈와 같은 현대의 고전이 될 만한 양서들을 계속해서 출간하고, 2007년부터는 지난 1975년 100권 완간 이래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반세기 넘게 5,000여종 이상의 책을 출간한 을유문화사.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면면히 이어 내려온 전통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명제 위에 인문 출판의 명가(名家)로서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21세기가 요구하는 지성의 양식을 일궈 나갈 것을 기대해본다.

 

■ 영원한 출판인 정진숙 회장

 고령에다 몇 해 전 위암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매일 오전 9시쯤 60년대 옮긴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에 출근해서 오후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정진숙 회장.

 정회장에게는 특별한 소원이 없단다. 다만 3대를 이어가고 있는 을유문화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한글과 우리말 보존에 앞장서 왔음을 강조하면서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출판사로 남기를 희망한다.

 한국의 대표적 출판인 정진숙.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이 아름답듯이 한국 출판계의 거목으로 영원히 출판인으로 남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독서신문 1395호 [20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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