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독서할 때 책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책 속 명문장] 독서할 때 책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1.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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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독서에 관하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앞부분은 번역자인 프루스트 자신의 어린 시절 독서, 뒷부분은 일반적인 역자 서문에 해당하는 것, 즉 러스킨 저서에 대한 소개와 비평이다. 원작자에 대한 소개에 앞서 번역자 자신의 개인적 독서 경험이 먼저 제시되는 다소 파격적인 서문 형식은 그 자체로서 러스킨의 독서관에 대한 반박이다. 러스킨은 독서가 “저자들, 즉 지난 시대 최고의 교양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지혜와 교훈을 주기 때문에 “우리 정신적 삶에 있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프루스트는 이러한 러스킨의 주장을 비판하며 “독서의 역할이란 우리를 딱 문턱까지만 인도해 주는 것”이며 따라서 결코 답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며, 독서의 유용성을 평가 절하했다. (중략)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유용성보다는 개인적 의미에 있다. 프루스트는 거두절미하고 독자를 자신의 개인적 독서 경험 속으로 인도함으로써 독자들 역시 “구불구불한 꽃길을 걷는 사람처럼 발걸음을 늦추면서 자신들만의 추억을 떠올”리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독서의 의미를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그 책을 읽었던 시간과 장소의 이미지” 같은 개인적인 요소에서 독자들이 직접 찾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책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 그 책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었으며, 그때 무엇을 느꼈느냐 하는 것, 독서 경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6~17쪽>

방학 중의 독서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평화롭고 방해받지 않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나는 독서라는 피난처로 숨곤 했다. 아침에 모든 이들이 산책하러 나가고 나면 나는 정원에서 돌아와 1층 식당으로 슬며시 숨어들곤 했다. 점심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고 그동안에는 아무도 식당에 오지 않을 터였다. 물론 독서를 매우 중하게 생각해 별로 소리를 내지 않는 나이 많은 펠리시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방에서 나는 벽에 걸린 채색 접시들, 전일의 종이가 조금 전에 막 뜯긴 일력(日曆), 결코 답변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 인간의 말처럼 우리가 읽고 있는 말들을 방해하지도 않는 시계와 불의 부드럽고 의미 없는 말소리만을 벗 삼아 독서를 시작한다. <135~136쪽>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존 러스킨·마르셀 프루스트 지음|유정화·이봉지 옮김|민음사 펴냄|188쪽|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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