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스웨덴의 가구 회사 '이케아'가 정신적 모토로 삼은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칼 라르손의 그림과 윤동주, 백석, 김영랑, 이상, 노천명 등 시인 18명의 콜라보 시화집. 프랑스풍의 부드러운 빛깔로 두텁게 칠한 라르손의 수채화와 걸출한 시인들의 차갑지만 따듯한 시가 이 겨울, 마치 뜨끈뜨끈한 차 한 잔처럼 가슴을 적신다.
누나!/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흰봉투에/눈을 한줌 넣고/글씨도 쓰지 말고요/우표도 붙이지 말고/말숙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온다기에. <「편지」 윤동주>
내 마음을 아실 이/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내 마음을 아실 이」 김영랑>
가츨가츨한 머리칼은 오막살이 처마끝,/쉬파람에 콧마루가 서운한양 간질키오.//들창 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이 밤에 연정은 어둠처럼 골골히 스며드오. <「명상(瞑想)」 윤동주>
내 눈빛을 지우십시오/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으십시오. 나는 당신을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팔이 꺾여도 나는 당신을 내 심장으로 붙잡을 것입니다.//내 심장을 멈춘다면 나의 뇌수가 맥박 칠 것입니다//나의 뇌수를 불태운다면/나는 당신을 피 속에 싣고 갈 것입니다 <「순례의 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열두 개의 달 시화집 12월』
윤동주 외 지음·칼 라르손 그림|저녁달고양이 펴냄|112쪽|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