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신앙(어떤 신앙을 가졌는지는 상관없다)을 가지고 노년을 보내야 할까? 은퇴하면 그동안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던 소명도 끝이 나는가? (나는 8년 전에 은퇴했다) 아니면, 은퇴에 대해 다시 정의해야 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은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중략)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제기된다. 나이가 들면 영성이 고양되고 인생을 초월하거나 관조하는가? 특별히 나이 드는 것과 관련해 미덕이나 악덕이 있는가? 노년에 영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영적 훈련이 따로 있는가? 우리의 유산은 무엇인가? 모두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가? 누구도 이 질문들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통해 또다시 다음 생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고, 이 세상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선한 일인지 묻게 된다. <7쪽>
다윗을 비롯한 시편의 기자들은 현실주의자였다. 그들은 노년은 신체적으로 쇠하는 시기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9~10) (중략)
지혜는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노하우다. 우리의 날을 세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 것, 하루하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모든 날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74~75쪽>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라는 바울의 말에는 모든 분노가 죄악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포돼 있다. 교회의 영적 아버지들은 분노가 악한 영과 싸우거나 사악한 생각을 파괴하는 실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물론 분노는 하나님 안에서는 의로운 분노의 형태로 존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정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 안에 있는 대부분의 분노는 파괴적이다. 분노는 이기적인 동기가 부여되거나 (약 1:20) 화가 계속 사라지지 않으면 (엡 4:26~27) 죄로 바뀌어 버린다. 분노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공격한다. <129쪽>
『나이듦의 신학』
폴 스티븐스 지음|박일귀 옮김|CUP 펴냄|320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