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저자가 풍부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특유의 식물 감성을 바탕으로 쓴 인문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나무와 함께하며 느낀 깨달음을 활자에 담아 나무를 향한 사랑과 연민을 드러낸다. 또 사람들의 무관심에서 기인해 나무가 처한 비윤리 상황을 조명하면서 식물과 공존하기 위해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를 이야기한다.
은행나무는 수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화석에 등장하는 식물이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은행나무는 2억7,000만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1,000년이 넘었다. 은행나무는 모두가 포자를 이용해 원식적으로 번식할 때 종자 번식이 무엇인지 몸소 선보인 나무다.
나무의 몸은 수많은 모듈로 구성됐기에 움직일 수 없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수많은 초식동물이 호시탐탐 노리며, 애벌레도 주기적으로 와서 잎을 먹어 치운다. 그때마다 나무는 새로운 싹을 튀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야생동물은 다리 하나만 다쳐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볼 때 나무의 모듈성은 모든 생명의 필멸이란 한계를 불사의 경계까지 밀어붙인다.
계수나무는 왜 이별 순간에 달콤한 향을 내뿜을까? 잎이 정들었던 가지를 떠날 때 나는 향기,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는 발칙한 사랑을 위해 준비한 소품인가. 높은 가지 위에서는 표현을 안 하더니 땅에 떨어진 뒤 아픔을 새겨 넣으려는 것인지, 향이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자작나무는 북한의 개마고원 같은 심산유곡 원시림에 살고 있으며 남한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도 저자는 늘 대하는 나무처럼 자작나무가 친근하기만 하다. 자작나무 아래는 반그늘이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도 빛을 다 가리는 법이 없는데, 잎자루가 길어 작은 잎들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30년 전 백두산에 올라 처음 자작나무를 발견한 저자는 곧 자작나무와 짝사랑에 빠졌다. 남한에서 가장 춥다는 강원도 산골을 찾아다니다 터를 잡고 자작나무를 심었는데, 다행히도 잘 자라주었다.
『나무의사 우종영의 바림』
우종영 지음 | 자연과생태 펴냄|424쪽|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