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4년 “책, 싸도 문제 비싸도 문제”… 출판불황 타개할 대안은?
도서정가제 4년 “책, 싸도 문제 비싸도 문제”… 출판불황 타개할 대안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1.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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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경기가 어려우니 출판시장도 불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10년 전부터 소비자들의 도서 구매는 계속해서 감소했으나, 어려운 경제 사정이 겹쳐 불만이 커지는 눈치다. 출판·서점계는 불황의 원인을 찾으며 도서정가제 쪽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으나, 화살의 방향은 같지 않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대형서점과 대형출판사 쪽은 도서정가제를 완화하자고, 지방서점과 중소출판사 쪽은 도서정가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이 와중에 소비자는 당연히 불황이니 더 싼값에 책을 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역서점의 생존과 출판 콘텐츠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쉬운 문제가 아니다. 도서정가제의 딜레마다. 

확실히 출판시장은 불황이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말한 대로 2014년 4조2,300억원이었던 출판사 매출규모는 2016년 3조9,600억원으로 줄었다. 매출에서 학습서적을 빼면 2014년 1조2,238억원에서 2016년 1조1,732억원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지역서점 수는 2014년 1,625개에서 2017년 1,536개로 줄었다. 출판시장 종사자 수도 3년째 답보상태다.  

이러한 출판 시장의 불황에 대해 이상헌 의원은 도서정가제를 문제로 지적했다. 정가에서 최대 15% 할인만을 할 수 있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국민 독서율을 떨어뜨리고, 출판산업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2003년 도입된 것으로,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진 지역서점들의 요구에서 시작됐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개정된 것으로, 모든 책에 대한 할인을 최대 15%(간접할인 5% 포함)까지 제한한다. ‘출판산업 활성화’라는 명목이지만, 1차적인 기대효과는 책값 인하 경쟁의 과열을 막아 지역서점과 중소 출판사들을 대형서점과 출판사들과의 경쟁에서 보호하는 데 있다.    

대형 서점·출판사 정가제 완화 찬성… “책 못 팔겠다”   

대형 서점 관계자들은 도서정가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에 대체로 찬성한다. 서울의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지난 4월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한 소비자의 국민청원이 3만5,000여 건의 동의를 얻은 사실을 지적하며, “지역 서점을 살리려고 도서정가제를 하는 것은 좋으나, 정가제를 하는 만큼 소비자에게 다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불황에 소비자들의 구매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도 정가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서점 관계자는 도서의 재고·회전율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대형서점 같은 경우 과거에는 쌓여있는 재고를 홈쇼핑에서 50%에 팔기도 했다”며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이런 할인을 할 수 없어 우리뿐만 아니라 출판사들 쪽에서도 도서정가제 시행 후 창고비 등 재고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기준 30여억 원의 연 매출을 올린 서울의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할인행사를 염두에 두고 좋은 책들과 재계약을 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싸게 팔지 못하니, 팔 엄두가 안 나 좋은 책이라도 오래된 책은 재계약을 꺼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한, 출판사 입장에서는 안 팔리는 오래된 책들을 창고에 쌓아두면 창고비 등 물류비가 드는데 이 책들을 지금이라도 할인해서 팔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역서점·소규모출판사 “완전정가제 도입해야”… 생존권·다양성 위협     

그러나 지역서점과 소규모 출판사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확연한 온도 차를 보인다. 청주의 한 지역 서점 관계자는 “대형서점과 지역서점은 현행 도서정가제 하에서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현행 도서정가제에서 나아가 프랑스에서도 시행 중인 ‘완전 도서정가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매업체를 통해 책을 받는 지역서점과 그렇지 않은 대형서점은 공급률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출판사에서 바로 책을 받는 대형서점의 공급률은 대략 65% 정도다. 즉, 1만원짜리 책을 판매하면 출판사에 줘야 할 돈이 6,500원이다. 그러나 지역서점의 경우 유통구조상 출판사로부터 바로 책을 받기 힘들어 도매상을 거친다. 도매상을 거치면 공급률이 75% 정도로 오른다. 즉, 1만 원짜리 책을 판매하면 6,500원을 출판사에, 1,000원을 도매업체에 줘야 한다. 따라서 대형 서점은 지역서점보다 더 많은 할인이 가능하다. 대형서점이 지방서점과 달리 10%의 직접할인, 5%의 간접할인, 제휴카드사 할인에 더해 굿즈까지 제공하고, 온라인에서 구매 시 배송비를 무료로 할 수 있는 이유다.   

지역서점만이 아니다. 소규모 출판사에 도서정가제는 대형 출판사와 경쟁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한 소규모 출판사 관계자는 “도서정가제가 완화되면 대형출판사는 더 많은 할인 등 혜택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불경기에 비슷한 책이라면 소비자는 당연히 혜택이 있는 책을 구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도서정가제로 1인출판 등 출판의 다양성이 살아나고 있다”며 “도서정가제를 완화하면 도서 콘텐츠의 다양성을 짓밟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1인 출판사들은 2013년 3,730곳에서 2016년 4,938곳으로 늘었다. 매년 1종 이상 도서를 발행한 실적이 있는 출판사 숫자는 2013년 5,740곳에서 2014년 6,414곳으로, 2017년에는 7,775곳으로 증가했다.  

책값 할인 대안이었던 도서재정가제는 유명무실… 윈-윈 필요

이론적으로는 도서정가제를 유지하며 대형 서점·출판사의 재고나 할인판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도서정가제와 함께 시행하고 있는 도서재정가제다. 도서재정가제는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책에 한해 출판사 측에서 책의 정가를 임의로 재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예컨대 2만 원짜리 책의 정가를 5천 원으로 고쳐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이다.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정가를 고친다는 것은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새로 찍는 등 아예 새 책을 만드는 것”이라며 “여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또한 “책의 정가를 한번 내려놓으면 다시 올리기가 쉽지 않고, 소비자들은 정가가 내려간 책을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하며 잘 사지 않는다”며 “마케팅 측면에서도 정가를 다시 매기는 것이 할인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형 서점 관계자도 “일단은 라벨을 새로 붙여 서점에 재납품하기가 어렵다”며 “차라리 창고에 쌓인 재고를 할인해 판매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지만, 도서정가제를 완화하든 강화하든 한 쪽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도서정가제를 완화하는 대신 지역서점과 소규모 출판사를 국가적으로 지원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출판·서점 산업은 어떻게 보면 국민의 지식과 교양을 담당하는 기간산업(基幹産業)이다. 내달 6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도서정가제 4년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열린 토론회’를 여는 등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머리를 모아 출판시장 위기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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