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미투와 함께한 치우친 예술 검열
공지영 미투와 함께한 치우친 예술 검열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1.29 19: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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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지영 페이스북 캡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8일 소설가 공지영이 성추행 피해 사실과 함께 공유한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의 서평이 화제가 됐다. 해당 서평은 공지영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심상대의 소설 『힘내라 돼지』에 대한 비판 글이다. 

『힘내라 돼지』는 감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특수상해, 탈세, 뇌물수수 등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른 세 명의 죄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셋은 모두 59년생, 심 작가와 마찬가지로 돼지띠다. 그들 중 한 명은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도리어 여성이 ‘맞을 짓’을 했고,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셋은 여성을 혐오하고 대상화·도구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 공통점을 바탕으로 공감하며 친해진다.    

박 기자의 서평은 “문학은 남성 가해자의 ‘면죄부’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그는 소설가 심상대가 이 소설로 자신의 죄에 대해 변명을 하고 면죄부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심 작가가 저질렀다는 죄는 2015년 내연관계에 있는 여성을 주먹·발·등산용 스틱으로 여러 차례 폭행하고 차에 감금하려 한 혐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이런 심 작가의 전력을 투사해 보면, 소설은 그렇게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예를 들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빈대코’는 ‘감 따는 장대’로 아내를 때려 특수상해죄로 수감됐다. 박 기자는 이 ‘감 따는 장대’가 심 작가가 여성을 폭행했을 때 사용한 등산용 스틱을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했다. 박 기자는 “이런 장치는 의도적으로 뺐어야 한다고 보는데, 고의적으로 본인을 투영했다는 인상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소설에서는 빈대코가 “(아내가) 이웃 남자랑 붙어서 과수원을 독차지하려고 계략을 세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와 친한 다른 주인공 ‘털보’ 역시 아내에게 배신당한 사실을 알린다. 이 말을 들은 수감자들은 ‘여자가 맞을 만하네’의 논리를 펼치며 여성 혐오를 쏟아낸다. 감옥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뀐 것이다.   

박정훈 기자는 “죄수를 두둔하는 서술은 기존의 가부장적 편견을 확대하고, 역차별론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작중 화자의 말이나 생각이 곧 작가 개인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작가가 창조한 세계 역시 작가가 살던 시기나 경험, 사고방식 등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스스로 59년생 돼지띠에,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힘내라 돼지』가 ‘이 소설의 이야기는 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 소설이 심상대 작가의 면죄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예술을 한쪽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 데에 그리 호응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해당 소설가는 비판하더라도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 소설을 썼는지는 확인되지 않을뿐더러 예술이 하나의 문장으로 한 가지의 의미만을 담는 논술이나, 실용적인 글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비도덕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풍자적인 소설은 많았다. 예를 들어 소설가 전광용의 『꺼삐딴 리』의 주인공은 변하는 세태에 끊임없이 변절하는 인물이다. 『태평천하』, 『치숙』, 『미스터 方』 등 채만식의 거의 모든 소설에도 이번에 문제가 된 『힘내라 돼지』에서처럼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거나 불법을 저지르고 떳떳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들이 의미하는 바가 ‘비도덕성 예찬’이나 ‘불법 예찬’은 아닐 것이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생활을 한 소설가의 소설은 그렇게 보려 하지 않아도 시선이 자연스레 삐딱해지는 게 사실이다. 내연녀를 폭행한 자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공지영을 성추행한 것도 만약 사실이라면 지탄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술은 예술이다. 어떤 이는 『힘내라 돼지』에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는 작가의 모습을 느꼈다면, 어떤 이는 자신의 죄를 풍자로써 반성하려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고통을 토해내고 목숨을 건지면 그건 통속입니다. 그걸 꿀꺽 삼켜야 돼요. 그렇게 자신을 완전히 부패시켜야 대속(代贖)할 수 있어요”<276쪽>라는 소설 속 대사를 작가가 자신의 과거를 비하함으로써 풍자하기 위함인지, 박정훈의 말처럼 작가가 자신의 죄가 사해지기를 바랐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예술이란 자연이 만든 것인데 그 예술 자체가 최고의 목적이라고 믿게 된 순간부터 퇴폐가 시작된 것”이라며 “사람들은 어느 예술가가 무한한 것에 눈길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예술가 자체를 자기네 표본으로,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사람이 아닌 예술에 대해 한쪽의 해석이 무조건 맞다는 식의 해석은 예술의 가능성을 좁히는 ‘강요’이자 ‘강압’일 뿐이다. 크게 보면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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