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다] “함께 미래를 봅시다”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주한 폴란드 대사
[대사에게 듣다] “함께 미래를 봅시다”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주한 폴란드 대사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1.28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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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2018 책의 해’를 맞아 진행하는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 이태구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폴란드와 대한민국 사이. 그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역사적으로는 꽤 가깝다. 대한민국 역사와 마찬가지로 폴란드 역사의 뿌리에는 분단과 피지배, 반공, 독립운동이 있었다. 

피지배의 역사는 그 시기조차 비슷하다. 19세기 조선이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받고 각종 수호조약을 체결할 당시 프로이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나라를 빼앗긴 폴란드는 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 공국 시대(1807~1815)를 제외하고 120여년 이상 3국의 지배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폴란드에서는 1830년 독립을 위한 혁명정부가 조직됐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폴란드는 비로소 독립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독립은 유제프 피우수드스키(Józef Piłsudski) 국가 원수와 정치인 로만 드모프스키(Roman Dmowski), 당시 윌슨 대통령의 친구이기도 했던 이그나치 파데레프스키(Ignacy Paderewski)와 같은 위대한 폴란드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 폴란드는 1939년 다시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략을 받고 분할 점령된다. 이때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폴란드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평화를 맞았지만, 1947년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당 정부가 수립됐다. 이후 공산주의 체제가 소련과 폴란드에서 위기를 맞게 되면서 온전한 주권과 독립을 갖춘 자유주의 국가로 완성될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폴란드 대사관에서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주한 폴란드 대사를 만났다. 곰같이 커다란 덩치가 인상적이었다. 덩치만큼 큰 손으로 기자와 악수한 후 쾌활하게 자신의 딸이 그린 그림들을 보여줬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대사. 가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른 말 속에 담긴 지식과 지혜가 엿보였다.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적 특징은 있을 수 없다”는 “폴란드인들은 폐쇄적인 공산주의를 혐오한다”는 대사. 그에게도 우리 민족과 비슷한 상처가 남아 있는 듯했다.  

[사진= 이태구 기자]

-<책 읽는 대한민국, 대사에게 듣다> 캠페인의 명사로 선정되셨습니다. <독서신문> 독자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서신문>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주한 폴란드 대사입니다. 지난해 9월 24일 한국에 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폴란드의 유서 깊은 비즈니스스쿨인 바르샤바경제대학에서 부학장으로 있었습니다. 2008년 여름부터는 경북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국제관계 및 국제경제론을 강의한 바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이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국제관계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 게임이론, 그리고 세계 경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책도 몇 권 출간했습니다. 주로 국제관계, 국제적인 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폴란드 책 다섯 권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존 루이스 개디스의 『Strategies of Containment』와 말드윈 존스의 『The History of the USA』, 데이빗 오언의 『In Sickness and in Power』 등이 제가 번역한 책입니다. 

-올해가 폴란드 독립 100주년입니다. 대사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100주년이든, 110주년이든 모든 나라에서 ‘독립’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대한민국 국민들께서도 저를 십분 이해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도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주권을 빼앗기고 다른 나라에 지배당했던 아픈 경험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렵게 주권을 되찾았습니다. 우리는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항상 어떻게 하면 주권을 지킬 것인지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100주년은 저에게나 폴란드 국민에게나 매우 특별한 날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고, 나라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한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속해있고, 내 뿌리는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픈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 폴란드와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한국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이 필요 없이 멋집니다. 이보다 좋은 나라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의 역사를 아주 잘 알고 있고, 한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관심 있게 지켜봐 오고 있었습니다. 대사로 부임하기 전에도 정말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에서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 외교관으로서 그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기자님께서 말했듯 폴란드와 한국은 비슷한 과거사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함께 고통받았습니다. 당시 한국과 폴란드는 힘이 없어 자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가 힘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과 폴란드는 그 당시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과거를 보며 슬퍼하기보다는, 결국 지금 이 시점에 국가가 부강해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니 한국과 폴란드가 이제는 비슷한 과거사를 공유하는 데서 나아가 빛나는 미래도 공유했으면 합니다. 폴란드에 더 많은 한국의 투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상점에 더 많은 폴란드 물건들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폴란드 사람들이 K-Pop 같은 한국의 문화를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양국 간 관광객이 증가하고, 기업·정치인 간 교류가 늘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유할 빛나는 미래이고, 그렇게 된다면 양국은 더 이상 아픈 과거로부터 고통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진= 이태구 기자]

-폴란드인이 바라본 대한민국은 어떤지…

폴란드와 대한민국의 인연은 한국전쟁 정전 협정에 따라 만들어진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폴란드가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때와 비교할 때,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한국이 폴란드에 투자하는 금액은 연 30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제 폴란드 국민들은 일부 한국 대기업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폴란드에 있는 맛있는 한국 식당들도 폴란드 국민들에게 유명합니다. 

폴란드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보면, 몇 가지 형용사와 명사가 떠오릅니다. ‘안전한’ ‘깨끗한’ ‘잘 조직된’ ‘문화적으로 특별한’ ‘김치’ ‘아리랑’ ‘한국 위성 TV' ‘K-Pop’ ‘전자제품’ ‘신기술을 장착한 스마트폰’ ‘자동차’ ‘화장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등 입니다. 
아, 한국 화장품을 언급할 때, 폴란드 화장품도 한국 시장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한국에 폴란드 화장품이 진출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쇼팽, 퀴리 부인, 요한 바오로 2세, 코페르니쿠스, 얀 마테이코…. 모두 폴란드인이고 한국에서 유명합니다. 교육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폴란드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폴란드인이 인종적으로 특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에도 세종대왕이 있지만, 한국의 어떤 것이 세종대왕을 만들었는지는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국가에나 잘 알려진 영웅과 엘리트는 있기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국가는 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쇼팽을 비롯해 언급해주신 다른 폴란드인들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많지요. 요한 바오로 2세는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교황이 된 인물입니다. 쇼팽은 8세 때 이미 신동으로 소문났던 천재 피아니스트였고요. 저는 조금 최근의 유명인을 꼽고 싶습니다. 폴란드는 재즈 강국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재즈 피아니스트 크시슈토프 코메다(Krzystof Komeda)도 폴란드인입니다.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Rosemary's Baby)의 삽입곡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작가로는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Władysław Reymont)를 꼽고 싶습니다. 그는 소설 『소작농』(The Peasants)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쿠오 바디스』(Quo Vadis)의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나 체스와프 미워시(Czesław Miłosz)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와 같은 작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모두 노벨문학상 을 수상했습니다.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의 또다른 유명한 작품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소설에서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사회다윈주의’(생물 진화론을 자연과 사회의 차이를 무시하고 사회학에 도입하여, 생존경쟁과 자연도태를 ‘사회진화’의 기본적 동력이라고 보는 학설)라는 세계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폴란드를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폴란드 사회는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폴란드를 공산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는 공산주의를 발전시키고 추종한 적이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소련의 강요로, 스탈린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된 시스템이었습니다. 김일성을 최고 통치자로 했던 북한의 공산주의와는 더욱 유사점이 없습니다. 해당 시기(공산당 통치 및 소련 영향권에 있어 폴란드가 반독립국이었던 시기 : 1945~1989)의 체제는 소련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진 시스템이며, 폴란드인이 증오했던 시스템 중 하나였습니다. 폴란드 국민들은 강제적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자 이것이 잘못된 체제는 아닌지 늘 감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 국민들은 북한과 달리 1971년부터 자유자재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와 노르웨이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이런 개방성이 소련 치하에서 벗어났을 때 폴란드가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지금의 폴란드는 다른 국가들처럼 ‘시스템의 향연’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한·중·일 3개국 대학의 폴란드어과 컨퍼런스와 지난 11일 독립기념일 기념 달리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행사에 대해 소감을 밝혀주신다면...

한국, 중국, 일본 대학의 폴란드어과가 모여 폴란드와 폴란드 문화에 대해, 폴란드어로 서로의 의견을 말하는 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이 폴란드 대사로서 정말 영광이고,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폴란드의 언어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 역시 반영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언어는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특정 언어를 익혔다고 하더라도 그 언어로 상대방과 지식을, 생각을, 마음을 공유할 수 없다면 재앙일 것입니다. 일곱 가지 언어를 익혔다고 해도 말할 것이 없고 의견을 나눌 대상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단순히 폴란드어를 홍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폴란드어로 지식을, 추상적인 것을 포함한 지혜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독립기념일 달리기 행사에서는 걱정했던 바와 달리 다행히도, 제가 마지막 주자는 아니었습니다. (웃음) 독립을 기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달리기’이기에 더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달리기’는 평화로운 운동이고, 그 평화를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폴란드의 독립기념일을 홍보하는데도 분명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이태구 기자]

-한국과 폴란드가 앞으로 어떤 부분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한국과 폴란드는 향후 ‘녹색 에너지’나 ‘스마트 카’, ‘스마트 시티’, ‘핀테크’ 영역에서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행정적인 부분에서 이를 돕고 싶습니다. 지금은 활발하지 않지만, 길이 한 번 열리면 급속도로 물길이 트일 것입니다. LG나 삼성같은 회사들은 폴란드의 주요 산업 거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한 기술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습니다. 현대의 기술은 언제 그 한계에 도달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산요(Sanyo)같은 1980년대 일본의 전자 회사들은 80년대 당시에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첨단이었지만, 지금은 망하고 없습니다. 기술이 한계점에 다다른 이 시점, 지금은 시스템을 넘어서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 혁신을 한국과 폴란드가 함께 이뤄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 개발한 혁신적인 기술을 폴란드가 유럽의 기준에 맞춰서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양국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봅시다.   

-대한민국 국민이 폴란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책 몇 권 추천해주신다면…

먼저, 지난 31일 열렸던 3개국 폴란드어과 연합 컨퍼런스에서 언급된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인형』을 추천합니다. 컨퍼런스에서는 이 소설을 번역한 3개국 역자들이 통합 세션을 갖기도 했습니다. 19세기 후반 폴란드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폴란드 역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72가지 주제로 전반적인 폴란드 역사를 소개한 김용덕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의 『이야기 폴란드사』도 좋습니다. 
공산정권 하의 폴란드 모습을 알고 싶다면, 만화 『마르지 1984』를 추천합니다. 만화가 마제나 소바의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연재됐습니다. 
『판타스틱 폴란드』는 폴란드에서 오랫동안 체류한 한국인들이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짧은 에피소드를 모아 출간한 에세이집입니다. 이 역시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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