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2009년 드라마 ‘시티 홀’을 끝으로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 배우 추상미. 이후 그는 영화감독으로 전향해 두 편의 단편영화(분장실·영향 아래의 여자)를 선보였고, 올해에는 장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스크린에 올렸다. 영화의 공통된 주제는 ‘상처’였다.
첫 영화 ‘분장실’(2010)에서 추 감독은 자신의 상처를 필름에 담아냈다. 공연을 앞두고 공황장애를 겪는 배우의 상처 난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어 두 번째 영화 ‘영향 아래의 여자’(2013)에서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삶을 그려내며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상처로까지 초점을 옮겨냈다. 그리고 세 번째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는 민족과 국경을 넘어선 이별의 상처를 조명하면서 점층적인 상처의 확장을 이뤄냈다.
상처를 매개로 한 탈북민과 추 감독의 연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추 감독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등장한 탈북 소녀 송이 같은 탈북민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고, 탈북민 자매들과 지인으로 구성된 교제 모임을 꾸려가며 연합을 도모하고 있다. 그는 “상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열쇠”라며 “외로움이라는 공통의 상처가 있다면, 서로 완전히 똑같은 일을 겪지 않았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탈북민을 품고 통일을 기원하게 된 추 감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궁금해졌다.
- <독서신문>이 선정하는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셀럽으로 선정됐다. 소감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린다.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셀럽으로 ) 선정된 것에 죄송한 마음이다. 그래도 독서를 즐기는 이미지로 봐주시고 이렇게 선정해 주셔서 감사하다. <독서신문> 독자는 특별한 분들이실 것 같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고 늘 곁에 책을 두고 살아가는 분들이란 생각이 든다. 책과 영화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하기에 독자분들과 소통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더 반갑게 느껴진다.
-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오랜 시간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관객몰이에 성공한 모습이다.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셔서 다큐 영화로서 꽤 오랜 시간(지난 10월 31일 개봉 ) 극장에 걸리고 있다. 지난주까지 전국 150여 개 관에서 상업영화와 함께 상영되다가 지난주(11월 셋째주 )부터 CGV 아트하우스로 옮겨가면서 60여 개 관에서 상영을 계속했다. 이번 주부터는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총합해보면 현재까지 4만 명 정도가 영화관을 찾아주셨다. 사실 저예산 독립예술영화가 관객 수 1만 명을 넘기가 쉽지 않다. 다큐 영화는 특히 더 그렇다. 최근(지난 8일 ) 개봉한 독립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박해일, 문소리 씨 등 좋은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열흘이 지나서야 관객 수 1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 근황은?
아직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GV(관객과의 대화) 일정이 많이 남아있다. 또 최근 감독으로 전향한 후 언론 주목을 많이 받으면서 방송이나 강연프로그램에서 많이 불러주신다. 제가 하면 좋겠다 싶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방송 스케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미국 시사회도 준비하고 있어 아직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매달려있는 상황이다.
- 감독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무대에 오를 때 개인적으로 어떤 차이를 느끼는지? 혹시 더 애정이 가는 쪽이 있는지?
지금은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배우보다는 감독에 더 집중하면서 매력을 느끼고 있다. 배우는 감독과 비슷하긴 한데 접근 방법이 많이 다르다. 배우는 아무래도 내가 작품을 선택한다기보다는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하는 직업이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당분간은 감독으로서 연출에 집중할 예정이다.
- 이전에 감독을 맡은 두 편의 단편영화 ‘분장실’(2010), ‘영향 아래의 여자’(2013)와 이번 ‘폴란드로 간 아이들’ 모두 상처를 다루고 있다. 상처를 주제로 삼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개인적인 이유가 있기는 하다. 유년 시절부터 상처가 있었는데 그것이 내 안에서 속 시원히 해결되거나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이 되다 보니 방황이 조금 많았다. 심적인 방황이 있었고 그런 시간을 겪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할지, 또 상처가 한 사람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것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부분이 주제가 됐다.
첫 번째 영화 ‘분장실’(첫 공연을 앞둔 배우가 긴장과 불안으로 공황증세를 겪는 내용 )은 자전적 영화로 제 이야기를 담았다. 반면 두 번째 영화 ‘영향 아래의 여자’(보험설계사 엄마가 아이를 잃는 내용 )는 제 심리 범주에 있긴 하지만 제가 겪은 직접적인 상처는 아니다. 산후우울증을 겪은 감정이 반영된 정도다.
-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4년 가까이 준비했다고 들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만큼 영화를 통해 사회에 전하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을 듯하다.
산후 우울증이라는 상처로 출발한 여정이었다. 개인적인 상처를 안고 폴란드에 가면서 한국 전쟁고아라는 역사의 상처와 만나는 접점이 생겼다. 개인의 상처든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상처든 이것이 그냥 폐기처분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상처가 우리 마음에 타인을 향한 연민과 공감 능력을 배가시키면서 우리 사회가 지닌 아픔을 품고 치유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 NGO, 병원, 학교, 종교계에서 영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체관람도 계속되는 모습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영화에 하나님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기독교 복음에 가까운 이야기다. 사랑을 다룬 주제고 그 사랑이 어떤 이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실천한 사랑처럼 조건 없이 소외된 약자를 돌보는 사랑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나 천주교에 계신 분들이 보시고 큰 감동을 받으신다. 특히 북한이나 통일에 관심이 많은 크리스천(기독교 신자)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다.
후반기로 가면서는 컴패션,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NGO(비정부 기구) 단체 관계자나 병원 관계자, 교사분들이 단체관람하시면서 굉장히 많이 공감하셨다. 사명감이 요구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이 봐주신 것 같다.
- 4년을 준비하면서 감독의 무게가 상당했을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애초에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나중에 다큐멘터리로 전환했는데, 영화 후반 작업 중 시국(남북관계 )이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전쟁의 위기가 돌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다 끊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아~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통일이나 북한을 품자는 메시지를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시기였다. 영화는 혼자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극장에 걸어 줄 배급사가 있어야 하는데, 주변 영화 관계자들이 “지금 이 타이밍에 이건 힘들겠는데”라고 하니 정말 힘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8년 들어 남북관계가 회복되면서 정말 만세를 불렀다.
- 탈북 소녀 송이와 함께 출연했다. 영화에서도 살짝 언급했는데 송이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 폴란드에 갔을 때 송이는 자신의 상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후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나고, 그 (과거 북한 고아를 돌봐줬던 )선생님들이 65년 전 헤어졌던 북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송이를 안아주고 “어떻게 넘어왔냐”며 관심 가져주고 울고 하시니 이 친구도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북한 아이들이 똑똑하고 예쁘고 성실했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송이는 “남한에 와서 늘 무시당하고 입을 열면 북한 사투리를 들키니까 말도 안하고 그랬는데 난생처음으로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송이에게 그 순간은 힘들었던 남한 생활이 회복됨과 동시에 정체성이 바로 세워지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저와의 마음 장벽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폴란드 선생님들이 매개가 돼 송이가 마음을 열게 됐다.
-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과 제작 예정인 극영화 ‘그루터기’에서 탈북민 출신 배우를 등용했다. 문화 차이 등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다음 작품으로 준비 중인 ) 극영화 ‘그루터기’의 조단 역으로 탈북 청소년을 등용해보자는 취지에서 오디션을 진행했다. (오디션에서 선발된 ) 송이 등 탈북 자매 몇 명과 남한 사람을 포함해 십여 명 정도가 ‘모자이크’란 모임을 가지며 교제하고 있는데, 북한 친구들의 경우 자기 의사 표현을 할 때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가끔은 ‘오 저런 얘기는 좀 가슴에 담아두지 왜 입 밖에 내고 그러지, 무례하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남한 사람들은 예의로라도 본인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얘기하지 않는데, 이런 모습은 북한 친구들 입장에서 가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가장 크다.
또 탈북민들은 체제 트라우마라는 게 있다. 오랜 시간 (북한 체제 안에서 )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하면서 상대방을 비난 조로 얘기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인데, 상대방의 결점을 딱 집어서 지적하는 것은 이런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한 사람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힘들지만, 이런 경우에는 ‘쟤네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했어’라고 여기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키(핵심)는 상처다. 처절한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외로움이라는 상처가 있을 경우, 완전히 똑같은 일을 겪지 않았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도 상처가 보석같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모자이크) 모임 안에서도 상처가 깊은 사람들이 (탈북민을) 훨씬 잘 이해하더라. 일단 그렇게밖에 할 수밖에 없는 내면을 이해하고 나면 이들이 좀 왜곡되고 기질적으로 맞지 않아도 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등장한 추상미 감독을 반가워하는 사람이 많다. 또 앞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연기자로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 죄송하긴 한데 영화 작업으로 인해 당분간 연기는 힘들 것 같다. 언젠간 연기를 다시 하긴 할 예정인데 일단 다음번에는 극영화 ‘그루터기’의 감독으로 찾아뵙게 될 것 같다. 현재 시나리오는 3고(세 번째 수정본) 정도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다. 내년부터 집중할 예정이고 만드는데 3년 정도 보고 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 시기가 가능하면 빨랐으면 좋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자주 만나 뵙고 싶지만, 제가 감독이다 보니 영화가 세상에 나올 때쯤 되면 영화 홍보를 위해 언론에 나왔다가 잠적하는 생활을 반복할 것 같다. 그사이에 좋은 방송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려고 한다.
-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혹은 그 외에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지.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마케팅이나 기업 성공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난, 장애, 불운, 압제 등 피할 수 없는 강력한 거인 앞에 선 평범한 사람들을 승리로 이끄는 지침서에 가깝다. 다음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이 소설은 '아버지 죽이기'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연루된 인간들의 정신세계와 종교세계를 다루며, 죄인들이 어떤 벌을 받고 구원되는가를 보여준다. 죄와 구원의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마지막 추천도서는 헨리 나우웬의 『상처입은 치유자』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능력도 커지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범위도 깊어진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