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통신구 화재’ 통신장애의 반전?... “묘한 해방감”
‘KT 통신구 화재’ 통신장애의 반전?... “묘한 해방감”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1.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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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에서 KT 관계자 등이 복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에서 KT 관계자 등이 복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초연결 사회’의 명암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24일 오전 11시 21분께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KT 아현빌딩(아현지사)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의 화재로 전례 없는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통신장애 여파로 서울 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은평구 일대와 경기 고양시 등지에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 카드 결제 단말기 등이 먹통이 되면서 극심한 시민 불편을 초래했다. 사고 후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완전 복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통신 장애가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 평가도 흘러나오고 있다.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는 일상을 순식간에 뒤흔들었다. 휴대폰 등을 통해 항시 누군가와 연결된 상태에 익숙했던 대다수 사람은 갑작스러운 통신장애에 크게 당황했고, 해당 지역의 상점은 카드 결제가 막히면서 영업에 큰 차질을 빚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애물단지 취급받았던 공중전화에는 오랜만에 긴 줄이 늘어섰고, 상점에서는 체크(신용) 카드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처럼 현금만이 오고 갔다. 세상과 연결된 끈이 끊어진 상황에 많은 사람이 불편함과 두려움, 답답함을 호소했다. 경찰서와 병원의 통신망도 제한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정상적인 업무처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 25일 오전에는 통신 장애로 119 신고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마포구 용강동에 사는 70대 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반면 통신 장애로 인한 반강제적인 아날로그 생활에서 잊고 있던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간 눈과 귀를 강탈했던 스마트폰과 TV가 불통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와 명상, 가족 간 대화 시간 등이 마련된 것이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모(36) 씨는 “TV도 인터넷도 안 되니 무료해서 아버지, 여동생과 마주 앉아 카드 게임을 했는데, (게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며 “최근 몇 년 중 이번 주말에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고 가장 오래 이야기한 것 같다”고 전했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모(38) 씨는 “인터넷이 끊기니 그야말로 원시시대였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구매한 후 처박아뒀던 책 ‘골든아워 1·2’ 시리즈를 정주행(시리즈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봄)했다”며 “외부 방해 없이 독서에 집중하니 정말 오랜만에 책 읽는 재미를 느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럽고 불편했지만,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일각에서는 “통신수단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대중의 피로감이 반영됐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조슈아 쿠퍼 라모(JOSHUA COOPER RAMO)는 책 『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에서 “(과거보다 ) 훨씬 더 빠르고 똑똑한 연결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시대는 대단히 흥미진진하지만, 지독하게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게 됐다”며 “우리는 휴대폰과 꺼지지 않는 통신 장치들 덕분에 가장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오히려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얽매여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지인 또는 낯선 사람과 연결되는 기회와 다양성은 넓어졌지만, 교제의 질은 크게 낮아졌고 실시간 소통에 피로감을 느낄 우려까지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현재 시중에는 수많은 동영상 랜덤 채팅 앱(APP) 서비스가 존재한다. 이런 서비스는 낯선 사람과의 실시간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데, 대표적인 서비스는 한국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영상 채팅 앱 ‘아자르’(Azar)다. 현재 전 세계 이용자만 1억 명에 달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해당 서비스를 통해 깊이 있는 만남을 가졌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채팅 상대가 다양하긴 하지만, 피상적인 접촉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구글플레이에 남겨진 고객 평에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다짜고짜 반말에 자기 것(성기 ) 볼 거냐고 물어보고” “완전 최악, 나이도 어린데 (상대방이 ) 음란물을 보여주네요” 등의 댓글이 즐비하다. 아자르와 유사한 러시아의 동영상 채팅 서비스인 ‘챗룰렛’의 기술 개발자인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챗룰렛에서 사람들은 평균 2초마다 다음(사람)을 클릭(선택)하기 때문에 심도 있게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챗룰렛에서 (이용자의) 얼굴과 신체는 (인격체가 아닌 ) 하나의 사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또 성욕 해소의 도구로 남용하는 경우가 많은 문제도 지적했다.

책 『하얀 이빨 1·2』로 국내에 알려진 제이디 스미스(Zadie Smith) 작가 역시 “거의 모든 소셜미디어가 서로 빈약하고 피상적인 연결을 하도록 권장한다”며 “저커버그(페이스북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 )는 개인적인 자잘한 정보의 교환이 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영국의 유명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은 책 『공감하는 능력』에서 “갈수록 인터넷 관계에 더 많이 엮어 드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것이 자신의 성격과 관계들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며 “인터넷은 공감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여건인 ‘두터운’ 친교를 희생시키고 ‘얇은 초연결’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며 “(소셜미디어에서 충족되지 않는 ) 깊이 있는 친교에 허기를 느낀다면, 이제는 디지털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전 세계적 전자두뇌에 연결돼 있는 시간을 줄이기 시작할 때가 된 것”이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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