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쓸모 있는 + 인간’
누군가의 인생에 ‘쓸모’라는 잣대를 들이민다? 굼금하면서도 삐딱한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어느덧 인생 쓸모를 다한 것 같아 헛헛해진 40대 중반의 남자와 청춘보다 더 에너제틱한 67세 빈센트의 이야기는 금세 나를 사로잡았다.
두 남자는 주로 아침 일찍 만났다. 이들의 아침 대화는 쓸모 있고 생생하다. 나도 이 대화에 한자리 끼어들어 ‘어른의 쓸모’에 대해 얘기 나누고 싶어진다. ‘쓸모 인류’이자 ‘요리 인류’인 빈센트의 부엌에서 그가 손수 만드는 못난이 빵을 먹으며 그의 삶을 가까이 지켜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4쪽>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 있다. 기본 없이 버텨온 삶이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흔들렸으나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런 날을 마주하니 알겠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는 법은 배웠으나, 다시 일어서는 법은 배운 바가 없다. 내 삶의 ‘쓸모’를 찾아 나서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6쪽>
일부러 ‘느리게’ 걷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생의 ‘결기’가 있다. 빈센트의 “대충하지 않는다”는 말이 “절대 대충 살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혼잣말을 읊조렸다.
“대충 살지 않는다, 절대 대충 살지 않는다.”
고작 서너 단어로 이뤄진 이 말이 어찌나 속이 찔리던지. 결국 대충 살아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아닐까. 앞부분에 몇 마디를 덧붙이면 어떤 격언보다 결기 있는 ‘어른의 한 문장’이 탄생할 것 같았다. 그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절대 대충 살지 않는다.” <43~44쪽>
나의 첫 단추는 잘 끼워졌을까. 아니다. 남이 괜찮다고 말했던 편한 길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얼버무린 삶이라 결국 손이 더 가는 나이가 됐다. 지금 재수선을 하자니 투입돼야 할 엄청난 시간과 비용에 덜컥 겁이 난다. 이번에도 적당히 타협한다면 버려지는 일만 남았겠지. <69쪽>
한 인간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그만큼의 사연이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방금 먹은 음식을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말해주겠소”라는 유명한 말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음식이 취향에 관한 것이라면, 물건은 ‘쓸모’와 관련이 있다. <93쪽>
돌아보면 천천히 배운 적이 없다. 모든 시험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게 이 사회였다. ‘속성’으로 배워도 성적만 잘 나오면 그만이었다. 어른이 돼 맞이하는 속성의 결과는 참혹하다. 그때의 성적은 끌어올렸지만, 살아가는 성적은 제대로 올린 바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 만드는 법을 천천히 배웠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배우는 것은 몸의 기억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스타를 계속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손은 기억했다. 요즘도 필요할 때 봉골레 파스타 하나쯤은 뚝딱 만들어낸다. 느리게 배운 것들이 몸의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71~172쪽>
『쓸모인류』
빈센트·강승민 지음|몽스북 펴냄|272쪽|14,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