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이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 지난 4월 도서정가제 강화를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글은 약 3만5,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기자가 만난 많은 사람들도 책이 ‘싸다’는 사람은 지역 서점 관계자나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드물었다. 불경기로 팍팍한 삶에 책 사기가 더 어려워진 모습이다. 책이 비싼 이유로는 대개 책 할인율을 15%로 제한한 도서정가제를 들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책값 할인을 막아 싼값에 책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대형서점과 대규모 출판사로부터 지역서점과 소규모 출판사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도서정가제가 일부 국민들 눈에는 가시다.
*현재 도서정가제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자유 가격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미권 국가를 제외하고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스위스, 네델란드, 일본 등 OECD 회원국 중 14개국에서 도입해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과 독일은 도서의 할인을 아예 금지하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 중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나라 책값이 비싼가? “우리나라 책은 외국에 비하면 싼 편”이라는 식의 말은 많이 듣지만, 이에 대한 자료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직접 비교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불멸의 고전 『노인과 바다』를 세계 서점에서 사보기로 했다. 비교 대상은 영국·미국·캐나다·프랑스·독일·일본·호주·이탈리아 서점에 있는 『노인과 바다』로, 포켓북이 아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크기의 페이퍼백(보급판)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교 대상 국가 전부보다 우리나라 책값이 쌌다. 우리나라에서 『노인과 바다』는 민음사, 문학동네 등에서 정가 8,000원에 인터넷 서점에서 10%할인이 붙어 7,200원에 살 수 있다. 가장 비싼 『노인과 바다』는 9,800원으로, 만 원을 넘지 않았다.
반면,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 국가 전체에 배송하는 유럽 온라인 서점 ‘The European BOOKSHOP’에서 영어로 된 페이퍼백 『노인과 바다』의 가격은 최소 6.99파운드로, 한화 1만282원(이하, 2018년 11월 15일 15시 기준 환율 적용)이다. 각 국가의 언어로 된 책은 더욱더 비쌌다. 도서에 대해 5% 미만의 할인을 인정하고 있는 프랑스 서점에서 가장 저렴한 『노인과 바다』는 9.8유로(1만2,548원)였으며 독일 서점에서 9유로(1만1,522원)였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은 ‘문고판’이라 불리는 포켓북이 다른 나라보다 많이 출간됐고, 많이 팔렸지만 우리나라에서 4,000원 내외로 살 수 있는 『노인과 바다』 포켓북이 7,000원 정도였다. 포켓북이 아닌 『노인과 바다』는 1,296엔(1만2,895원)부터 1,620엔(1만6,119원)의 가격 분포를 보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최대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노인과 바다』는 10.2유로(1만3,053원) 이상에 살 수 있었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 미국·캐나다·호주의 『노인과 바다』도 우리나라보다 비쌌다. 미국과 캐나다는 모두 아마존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가장 저렴한 페이퍼백이 11.69달러(1만3,230원)였으며, 15달러 이상도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초대형 서점 체인업체 반스앤노블에서 『노인과 바다』는 15.95달러(1만8,052원)가 가장 저렴한 편이었고, 31.46달러짜리도 있었다. 호주 유명 인터넷 서점 북토피아에서 『노인과 바다』는 14.5 호주달러로, 한화로 1만1,904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나라 책값이 마냥 ‘싸다’라고만 생각한다면 아직 섣부른 판단이다. ‘비싸다’는 개념은 애초에 주머니 사정에 영향을 받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더 부유한 나라 국민은 책값이 아무리 올라도 싸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 국민의 평균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국민총소득(1인당 GNI, 한나라의 국민이 국내외 생산 활동에 참여하거나 생산에 필요한 자산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를 인구수로 나눈 것 )으로 따져도, 우리나라 책값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저렴한 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GNI는 2만9,745달러로 비교했던 미국(5만7,000달러), 호주(5만2,673달러), 독일(4만5,709달러), 캐나다(4만4,520달러), 프랑스(4만617달러), 일본(3만9,605달러), 영국(3만8,978달러), 이탈리아(3만2,767달러)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나 2018년 11월 15일 15시 기준 『노인과 바다』를 각국의 국민이 산다고 할 때, 개인의 소득에서 『노인과 바다』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에서 대략 0.021%이며, 비교 대상국 중 3번째로 낮았다. 1위는 호주로, 대략 0.02%였고, 그 뒤를 미국(0.0205%), 독일(0.022%), 영국(0.023%), 프랑스(0.024%), 캐나다(0.026%), 일본(0.028%)가 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 책이 비싸니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다소 힘을 잃는다. 물론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면 책값이 지금보다 훨씬 싸지긴 하겠지만, 대형·온라인 서점에 밀린 지역서점들의 생존은 위태로워질 것이 뻔하고 소규모 출판사는 대규모 출판사와 경쟁이 어려워져 출판의 다양성이 저하될 수 있다. 도서정가제에 관해서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