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마블 코믹스’의 수석 작가 겸 편집인 스탠 리(Stan Lee)가 12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95세.
사망 직후 그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단어는 ‘Excelsior.’ ‘더욱더 높이’라는 뜻으로 그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많이 사용하던 말이었다. 그는 ‘Excelsior’을 외치며 슈퍼히어로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해당 트윗이 올라온 뒤 3시간 여 만에 35만4,000여 번 ‘리트윗’됐고, 75만9,000여 건의 ‘좋아요’가 눌렸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블랙팬서, 헐크, 엑스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전 세계를 열광시킨 ‘마블 영화’의 뿌리에는 ‘대부’ 스탠 리가 있었고, 그는 곧 ‘마블’ 그 자체였다.
그는 1922년 12월 28일 미국 뉴욕주 맨해튼에서 스탠리 마틴 리버(Stanley Martin Lieber)라는 이름으로 2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가난한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였다. 10살 때부터 셰익스피어, 코난 도일,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마크 트웨인 등의 소설을 탐독했다고 알려졌다.
1939년 삼촌의 도움으로 들어간 만화 회사 ‘타임리 코믹스’(Timely Comics)에서 보조로 일했으며, 여기서 만난 작가 잭 커비(Jack Kirby, 1917~1994)와 함께 그의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캡틴 아메리카’를 만들어냈다. 그 후 그는 마블 코믹스 편집장과 마블 엔터테인먼트 사장 등을 역임하며 1960년대 ‘펄프 픽션 영웅’들을 쏟아냈다. 그 영웅들은 21세기에 와서 대중문화가 됐다.
그의 다작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는데, 한 인터뷰에서 “내가 무엇을 쓰든 그것은 한번 앉은 자리에서 다 끝냈다”라며 “나는 최고의 작가는 아닐지라도 가장 빠르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작품을 만들 때 ‘마블 메소드’라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마블 메소드’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완벽한 스크립트를 줘서 이를 바탕으로 만화를 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요약본을 주고 어떻게 그리든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1994년에는 만화계 아카데미상인 ‘윌 아이스너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1995년에는 ‘잭 커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에는 ‘미국 예술 훈장’을 받았다.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마블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했던 그의 모습이 익숙하다. 그는 40여 편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의 인생이 마냥 빛났던 것만은 아니다. 스탠 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기여도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일부 마블 팬들은 다수의 마블 캐릭터를 디자인한 일러스트레이터 잭 커비가 일생동안 부당하게 로열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1년 ‘POW! 엔터테인먼트’ 설립 후 2005년까지 마블과 로열티 등 저작권 문제로 각종 법정 다툼에 시달렸으며, 말년에는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다.
몇 해 전부터 폐렴 등 지병을 앓아왔으며, 최근 호흡 곤란으로 병원을 찾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