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빼빼로 = 롯데’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특히 롯데를 ‘여성 혐오’ 그룹으로 인식한 여성 소비자 사이에서 오는 11일 ‘빼빼로 데이’를 맞아 롯데 빼빼로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지난 8일 포털 사이트 ‘다음’의 여성전용 카페 ‘쭉빵카페’(회원수 약 175만 명, 일평균방문자수 약 80만 명 )에는 한 사진을 담은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사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 게시물 캡쳐로, 해당 게시물에는 “곧 빼빼로데이니 여러분은 빼빼로를 사시겠죠. 빼빼로는 롯데꺼고 롯데는 이런 곳”이라는 글과 함께 한때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던 ‘롯데푸드’의 돼지바 광고 사진이 담겨 있었다.
해당 광고는 지난 1월 롯데푸드의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것으로, 당시 50만 부 이상 팔린 ‘페미니즘’ 도서 『82년생 김지영』의 표지 사진에 돼지 그림과 함께 ‘83년생 돼지바’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문제는 사진의 밑에 적힌 해시태그(단어 앞에 # 기호를 붙여 그 단어에 대한 글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기능 )였다. 해당 해시태그에는 “사람들이 나보고 관종(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 )이래”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원 소설 속 문장은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이다. 이 해시태그에 담긴 문장 때문에 해당 게시물이 ‘여성’을 ‘돼지’로 묘사하는 것 같이 보일 소지가 다분했으며, 곧 롯데푸드의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다. 당시 롯데 측은 “베스트셀러 패러디에 집중한 나머지 책이 담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했다”라며 사과했지만,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 8일 쭉빵카페에 올라온 해당 게시물은 오후 5시 41분에 게재됐으나 한 시간 만에 2만1,000명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40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롯데 안 사요” “롯데 당연히 불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 빼빼로 대신 가래떡 사먹는 날” 등과 같은 댓글은 대부분 롯데의 앞 글자를 ‘좆’(남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으로 바꿔 롯데의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6시 해당 게시물은 ‘다음 카페 6시 인기글’로 선정돼 카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볼 수 있게 됐다.
불매의 이유는 롯데의 여성 혐오 논란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달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는 롯데제과김해물류의 지입차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지입차도 노동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롯데푸드의 물류를 담당하는 롯데로지스틱 센터장의 갑질을 폭로했다. 글에 따르면 해당 노동자는 지난 5월부터 운행차량이 줄어 강압적으로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을 일한다. 또한 노동자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배차 정지를 당한다. 해당 노동자는 이 게시글에서 롯데로지스틱 센터장의 성희롱 등 다른 갑질도 폭로했다. 이에 대해 롯데로지스틱 측에서는 “허위사실”이라고 표현했으나, 각종 SNS상에 적힌 롯데에 대한 비난 댓글의 증가 추이를 볼 때 비난 여론이 롯데 빼빼로 불매 운동으로 확산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순실 뇌물 사건과 경영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아 수감된 이유를 들며 SNS 상에서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지난달 5일 출소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4일 출간된 그의 책 『트렌드 코리아 2019』와 지난해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올해의 트렌드인 ‘미닝아웃’을 설명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권력과 제도에 대한 믿음은 떨어지는 가운데, 시민·소비자 개개인의 내적 효능감은 높아지고, SNS를 위시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혼자서도 얼마든지 여론을 모을 수 있고 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며 “커뮤니케이션이 극도로 평등화된 사회에서 스스로의 신념을 강하게 확신하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추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 변화의 ‘하드캐리’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응하는 기업과 조직에 대한 시사점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라며 “선한 것이 강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롯데는 1996년 빼빼로 데이가 처음 생겨나면서부터 빼빼로로 매년 1,000억 원, 22년 동안 1조3,0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매출이 1조를 넘긴 과자는 국내에 10개가 되지 않는다. 빼빼로 매출의 큰 부분이 빼빼로 데이가 있는 11월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빼빼로 데이가 일요일에 있다는 점과 일부 대형마트의 휴무와 겹친다는 점도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