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한국 영화계의 주춧돌, 배우 신성일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이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 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오전 2시 반 별세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시간은 오전 2시 30분, 신성일은 지난해 5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투병해왔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이 강신영이었으나 고(故)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사용했으며 이후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영화계에 데뷔, 524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10편의 영화 제작에 관여했다.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과 1974년 ‘별들의 고향’ 1977년 ‘겨울여자’ 등은 그를 당대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려놨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1980년 아시아영화제 남우조연상, 1978년과 1987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등 수많은 시상식에서 빛났으며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등 숱한 공로상을 받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이 빛나던 자리는 영화계만이 아니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선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가 항상 대중의 칭찬을 받는 삶만을 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때 자신의 불륜 사실을 당당하게 고백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출간된 자서전 『배우 신성일, 시대를 노래하다』가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자 2011년 ‘한 아나운서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낙태했다’는 폭탄 발언이 실린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내놨다. 그는 이후 자신의 행동을 ‘과욕’이라 표현하며 가족들과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국회의원 시절 뇌물수수죄를 저질러 임기가 만료된 후 2년간 수감생활을 한 것도 오점으로 남았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2017년 한 방송에 출연해 “2년의 수감 생활을 하며 독서가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책과 신문을 몸에서 떼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었다.
유족으로 배우 엄앵란 씨, 장녀 경아 씨, 장남 석현 씨, 차녀 수화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