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바깥은 여름』 속 단편 「풍경의 쓸모」의 마지막 문단에 나오는 문장이다. 누군가의 마음은 추운 겨울인데 바깥은 찌는 듯한 여름이라면, 그 시차는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올여름이 그랬다. 바깥은 기록적인 폭염이었는데 일부 사람들의 마음은 취업난에, 실업에, 불황에 추운 겨울일 수밖에 없었다.
폭염이 시작되던 지난 7월 취업자 수 증가는 5,000명에 불과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몰아친 2010년 1월(1만명) 이후 8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지난 7월 실업자 수는 전년동월대비 8만1,000명 증가한 103만9,000명, 실업률은 3.7%로 전년동월대비 0.3%포인트 상승했으며 실업급여 수급자 수는 45만 명 이상, 지급액은 6,021억 원을 기록했다.
폭염이 언제 있었냐는 듯 붉고 샛노란 나뭇잎이 떨어지며 겨울이 가까워졌음을 알렸지만, 국민들은 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이 어색하지 않다. 지난 28일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 취득상실현황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줄곧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에서 9월 사이 ▲경영상 필요(해고·권고사직·명예퇴직 포함)에 의한 퇴사·회사불황으로 인한 인원 감축 ▲폐업·도산 사유로 고용보험을 상실한 근로자는 총 81만494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83만5,983명으로 처음으로 80만 명이 넘었고, 올해 역시 80만 명대를 유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숙박음식점의 폐업·불황형 실직자 수 역시 지난해 처음 7만 명대를 넘었고, 올해 역시 이를 유지했다.
혹자는 “이제는 겨울이 가까워 단풍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구조조정이 생각난다”고 한다. 실제로 단풍이 물들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이유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구조조정과 그 맥락이 같다.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일조량이 적어 이파리가 영양분을 합성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파리를 통해 오히려 수분과 영양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 나무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라는 벽을 만든다. 나무로부터 더 이상 수분을 공급받지 못한 나뭇잎 안에서는 엽록소가 파괴돼 나뭇잎이 붉게 변하고, 결국 말라서 떨어지게 된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마당에 새잎이 날 리 없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9월 집계된 실업자 수는 111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만1,000명 늘었다. 6개월 이상 구직한 장기실업자는 지난 9월까지 15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명 증가한 수치이며,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최대였다. 올해 3분기 대졸실업자수는 50만1,000명으로 역대 3분기 기준으로는 최대치였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올해 연평균 대졸실업자수가 처음으로 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구직단념자 역시 같은 기준으로 집계를 시작한 2014년 이후 올해가 가장 많았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원인이다. 안에서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건설업계와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계의 불경기가 괴롭힌다. 특히 하청업체가 많은 현대·기아차의 3분기 영업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76%나 급감하면서 지역경제까지 흔들리고 있다. 대외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이 돌 정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금리 인상을 하자 외국인 자금 이탈로 코스피가 급락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이 겹치며 전년 동기대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1분기 이후 최저치(6.4%)에 가까운 6.5%로 떨어졌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특히 대중국 수출 의존도(올해 1월~9월, 27%)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재앙에 가깝다.
떨어지는 단풍을 보니, 비로소 계절과 국가 사정이 일치한 듯싶다. 안도 겨울, 밖도 겨울이다. 부디 우리나라의 월동(越冬)이 순조롭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