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알고, 우리도 알지만... 한반도 ‘지경학적 장점’의 한계
트럼프도 알고, 우리도 알지만... 한반도 ‘지경학적 장점’의 한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30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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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냉전체제 종식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핵 동결·감축에 돌입한 상황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개발을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세계 질서를 주도하며 국제사회의 맏형 노릇을 해왔던 미국 입장에서 북한은 붕괴시키기에는 실익이 크지 않은, 그렇다고 남겨두기에는 몹시 신경 쓰이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그 배경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북문제와 관련해 (전임자들이) 70여 년간 해온 일을 나는 4개월 동안 해냈다”며 “핵실험 현장은 폐쇄됐고, 핵실험은 중단됐다. 더 이상 핵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위치가 매우 좋아 경제적으로 아주 좋은 곳이 될 것”이라며 “얼마나 좋은 위치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 사이에 있어 환상적일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로 취할 이득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짚은 한반도의 지경학적 의미는 지정학적 의미와도 맥을 같이한다. 예로부터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육상과 해상을 잇는 관문 역할을 감당해왔다. 대륙의 문물이 일본과 동남아시아, 환태평양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해양기지 역할을 맡았고, 역으로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했다. 한반도는 문·물의 유통로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세력 확장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일본은 이런 목적으로 35년간 대한민국의 주권을 수탈하면서 패권국가의 야욕을 드러낸 바 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자본주의 기치를 내 건 미국과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소련(현 러시아) 등이 제멋대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면서 한반도가 이념전쟁의 완충지대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반도는 지정·지경학적 이점을 가졌지만 이를 지켜낼 힘이 없었기에 끊임없는 외세 침략으로 고통받아 왔다.

분쟁 지역의 지리적 요인을 분석해온 팀 마샬은 책 『지리의 힘』에서 “한국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강대국들의 경유지가 됐다. 위로 압록강에서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천연 장벽이 거의 없으며 해상에서 육로로 진입한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며 “이런 배경에서 몽골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나갔고, 이어 명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그리고 일본도 수차례나 침입했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 문제를 다룬 책 『두 개의 한국』을 펴낸 돈 오버도퍼는 “1945년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련군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발간한 지도를 지참한 두 명의 하급 관리가 소련군의 남하를 중단시킬 지점으로 북위 38도선을 찍었다”며 “이 자리에는 어떤 한국인도 또는 한국 전문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철저하게 강대국의 이념적 논리에 한반도가 좌지우지된 것이다.

이후 사회주의 소련을 등에 업은 북한의 남침, 미군을 위시한 자유주의 연합군의 반격, 사회주의 중국의 개입을 겪으면서 남북한은 심각한 피해를 보았지만 결국 한반도는 다시 38도선으로 갈라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한반도 상황을 두고 마샬은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고 호시탐탐 영향력과 주도권을 노리던 초기 냉전 시대의 축소판이었다”고 평가했다.

냉전 시대는 끝이 났지만, 국가 간 알력다툼은 여전하다.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숨통을 끊고 싶어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죽지 않을 만큼 지원하면서 현 분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두 국가의 움직임을 가장 가까이에서 정탐할 수 있고 환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도 한국에 배치한 전략자산을 통해 조기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THAAD)를 배치하는 데 중국이 완강히 반대하는 것도 유사시 중국 동북지역 곳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레이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입장에서도 자유주의 진영과 국경을 맞대고 싶지 않을뿐더러 미군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은 더더욱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면서 지경·지정학적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한국은 아직까지 득보다 실이 더 큰 상태다. 지경학적 이득을 고려하기 전에 지정학적 위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묘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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