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중년, 잠시 멈춤 “나이는 그냥 숫자이고 숫자가 변하는 것뿐”
[책 속 명문장] 중년, 잠시 멈춤 “나이는 그냥 숫자이고 숫자가 변하는 것뿐”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0.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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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나는 그 침묵의 시간들을 채워가고 싶다. 노화로 인한 가시적인 변화를 파헤쳐보고 싶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아보고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삶의 전쟁터에서 얻은 상처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만일 내가 공원에 나온 젊은 엄마들 사이에 낄 수 있다면, 그래서 10여 년의 시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어느덧 쉰이라는 나이에 접어든 기분이 어떤지 얘기할 수 있다면 삶의 전쟁터에서 얻은 상처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런 것이 바로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탁본 같은 것이니까. 우선은 나이 듦이라는 주제에 좀 더 젊은 여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내 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 것이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나이를 감추고, 부정하고, 기피하게 하는 문화에 저항하고 싶다면, 그리고 아무리 나이 듦을 부정하고 회피하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결국 시간에 뒷덜미를 잡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럴 경우에도 역시 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몸 이야기에서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몸과 머리와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오갈 생각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시간여행에 대한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도 친숙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18~19>

내 복부 수술 자국은 내 인생의 한 계절이 완전히 끝나고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다. 그 때문에 나는 상실감에 빠져 서글퍼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나보다 두 살 많은 남편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진다. 이따금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남편을 살펴보곤 하는데, 남편은 나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쉰두 살의 나이에도 말쑥하고 여전히 남성미가 넘쳐 보인다. 자기관리를 게을리하지 않고,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쓰며, 하는 일에서도 아빠로서도 충분한 보상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글 쓰는 일을 한다.) 남편 말에 따르면,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생산적인 삶을 이끌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까 봐 두렵고, 그래서 가끔 마음이 다급해진다고 한다. 남편은 여러 가지 기획안 중에 무엇을 선택할까, 어떻게 해야 빨리 해낼까를 고민한다. 나와 달리 젊음이 사라지는 것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 듯하고,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 변함없이 그의 길을 비춰주는 전조등이 있는 양, 슬픔 따위는 그가 달리는 길 위에서 얼쩡대는 사슴에게나 일어나는 일인 양, 남편은 열정이 넘쳐 보인다. <21~22>

중년, 잠시 멈춤
마리나 벤저민 지음이은숙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펴냄284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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