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맨’ 속 숨은 의미 놓치셨나요?… 진보·투쟁·변화
‘퍼스트맨’ 속 숨은 의미 놓치셨나요?… 진보·투쟁·변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0.2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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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민음사, 영화진흥위원회]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18일 개봉한 퍼스트맨을 보고 일부는 지루하다는 말을 했다. “처음으로 달에 간 인간 닐 암스트롱의 전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퍼스트맨을 반만 본 것이다. ‘퍼스트맨에는 현상(現狀)에 안주하려는 인간의 보수적인 마음과 무기력함에 대한 진보의 투쟁이 숨어있다.

퍼스트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화 초반 (암스트롱의 딸의 장례식까지의 )시퀀스다. 초반에 비친 딸의 죽음은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하는 영화의 마지막 신(scene)까지 중간중간 등장하며 극을 지배하는 정서를 조성한다.

딸의 죽음 앞에 암스트롱은 무기력하다. 파일럿 시절, 그는 딸 캐런의 암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지만 딸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영화에 많은 죽음이 등장하지만, 캐런의 죽음이 가장 길고, 가장 슬프게 묘사된다.

죽음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이어진다. 파일럿과 우주비행사라는 위험한 직업을 가졌기에, 암스트롱 곁의 사람들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파일럿 시절 5명의 동료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나사(미국항공우주국, NASA: National Aeronautics &Space Administration)에서도 수많은 동료들이 그의 곁을 떠난다. 극중 암스트롱이 장례식용 검정 양복을 입고 있는 신은 흔하다.

영화는 암스트롱의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죽음들 사이사이 암스트롱이 딸을 회상하는 신을 배치한다. 이는 단지 암스트롱의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암스트롱이 수많은 죽음 앞에서도 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무기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혹은 진보하지 않는 ),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무한히 반복될 뿐인 무기력한세상사에 대한 메타포다.

암스트롱이 마주한 무기력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서문에서 비판한 영원한 회귀와도 상통한다. 쿤데라는 세상사는 반복될 뿐이라는 니체의 사상 영원한 회귀를 언급하며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며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회귀가 지배하는 세상은 무기력하다. 역사가 영원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쟁이든, 죽음이든, 독재든 어차피 반복될 일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개선하지 않고 혹은 진보하지 않고 안주하며 살게 된다. ‘영원하 회귀를 비판한 쿤데라는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돼야 한다면, 로베스피에르(프랑스 대혁명 당시 급진파의 지도자로 공포정치를 펼친 로베스피에르. 루이 16세를 비롯해 반대파 수백 명을 단두대에 올렸다 )에 대한 프랑스 역사의 자부심도 덜할 것이라며 역사 속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로베스피에르와 영원히 등장을 반복해 프랑스 사람의 머리를 자를 로베스피에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달 탐사를 위한 비행에 실패하고 죽어가는 사이, 미국에서는 ()달 탐사운동이 인다. “흑인들은 가난해서 빵을 훔치는데, 백인들은 달에 간다” “내 아파트는 월세고, 월세도 못 내서 거리로 도망쳐 나왔는데, 백인들은 달에 간다는 식의 구호가 유행한다. “인류의 진보를 위한 달 탐사라는 말에 한 공화당 의원은 국민들이 내는 세금도 생각해야 한다며 암스트롱을 타박한다. 인류의 진보는 이렇게 또다시 영원한 회귀에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쿤데라의 말처럼 갖은 시행착오와 반대, 온갖 냉소에도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한다. 암스트롱이 늘 간직한 죽은 딸 캐런의 팔찌를 달에서 흘려보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류가 안주와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마침내 진보를 이뤄냈다는, ‘영원한 회귀에 대항한 강렬한 무언의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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