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터졌다하면 “범인은 조선족”... 비굴·우월한 한국의 ‘제노포비아’
강력범죄 터졌다하면 “범인은 조선족”... 비굴·우월한 한국의 ‘제노포비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25 16: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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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영화 '범죄도시' 스틸컷]
[사진출처=영화 '범죄도시' 스틸컷]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얼굴 등을 30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가 주목을 받는다.

지난 14일 해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범인은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크게 퍼졌다. 피의자 김성수(29)의 게임 아이디가 한자로 돼 있으며, 살인 수법이 잔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온라인상에서는 “가해자가 전과 2범의 조선족이다” “예멘 난민 인도적 체류랑 겹쳐 대중 반감이 커질까봐 (경찰이 피의자가 ) 조선족인 것을 밝히지 않는다” 등의 낭설이 확산됐고, 이에 경찰은 “김성수(피의자)는 조선족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며 “한국인이며 부모 역시 한국인”이라고 해명했지만, 의심이 가시지 않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귀화한 조선족 아니냐” “김씨를 아는 동창은 신상을 올려달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조선족이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오원춘(조선족) 토막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당시 오원춘은 퇴근하는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납치해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358조각으로 토막 내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해당 사건을 두고 1심 법원은 오원춘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면서 국민적 반감이 크게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조선족은 인육(人肉), 장기를 매매한다’는 오해·편견이 형성됐고 이후 영화 ‘청년경찰’, ‘범죄도시’ 등에서 조선족을 범죄자로 묘사하면서 조선족을 향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높아졌다.

조선족이 특별히 강력범죄를 많이 일으킨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실제 범죄 발생률은 다른 결과를 제시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공식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에 따르면 2015년 인구 10만명을 기준으로 산정한 내국인 범죄자는 3,369명이었지만, 중국인(조선족 포함)은 1,858명으로 집계됐다. 동일한 인구 기준으로 비교할 때 내국인 범죄가 중국인 범죄보다 2배가량 높게 나타난 것이다. 2016년에 발생한 강력 범죄만 놓고 봐도 국절별 인구 10만 명당 강력범죄자 수는 중국인이 163명으로 16개국 가운데 중위권(9위)에 자리했다. 이는 1위인 몽골(3,473명)의 절반 수준으로 중국인의 실제 범죄율은 높지 않지만 오원춘의 엽기적 살인 행각이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면서 부정적 선입견을 낳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외국인 범죄와 관련해 인종과 국적을 강조해 보도하는 국내 언론 행태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책 『그건 혐오예요』에서 홍재희 영화감독은 “언론 보도를 보면 이주민이 저지른 강력 범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를 때마다 유독 이주민 신분을 부각해 이주민 전체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확산시킨다”며 “언론이 인종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면서 이주민을 경계하고 불온하게 여기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포는 타자에 대한 무지함에서 생긴다. 모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라며 “자주 접하지 못한 사람,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일수록 더 깊은 편견의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단일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타민족을 배척하는 풍토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책 『그건 혐오예요』에서 주현숙 영화감독은 “단일민족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주의를 고취하고자 강조되기 시작한 다분히 정치적인, 믿고 싶은 신화에 불과하다”며 “이때부터 한국인은 ‘순혈’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혼혈’ 또는 외국인을 차별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순수한 민족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갖은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수많은 여성이 강간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가 이민족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다. 책 『환향녀』에 따르면 병자호란 당시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그 중 일부가 돌아왔는데, 이들은 ‘환향녀’(還鄕女·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라 불렸고 그의 자식들은 ‘호로 자식’이라 불렸다. 청나라인의 유전자가 한국인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또 김해김씨(金海金氏)ㆍ김해허씨(金海許氏)의 몸속에는 인도인의 피가 섞이기도 했는데 책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 허황옥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가락국(AD 42년 김해 지역에서 건국된 나라 )의 김수로왕과 혼인하면서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낳았다. 김해김씨의 시조부인 김수로왕의 아들 중 8명이 아버지의 성을 따랐고 그 중 두 명은 어머니의 허씨 성을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허황옥이 인도에서 거느리고 온 수많은 수하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식을 낳았을 것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이 완전한 단일민족 국가라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이어 주 감독은 한국인의 제노포비아에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혐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인이 모든 이주민을 혐오·차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민족이라면서 미국·서유럽 교포는 환대하면서 탈북민과 조선족, 고려인은 차별·멸시하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다”고 꼬집는다. 부유한 선진국에서 온 사람은 비굴하게 추종하고 열등감을 느끼면서, 가난한 국가에서 온 사람은 깔보고 경멸하며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 넘어온 지 18년째인 김성복(가명) 씨는 “탈북민 누군가가 일탈 행동을 하기라도 하면 언론에서는 ‘탈북민’ 신분을 강조해 보도하고, 일반 사람들은 탈북민 전체의 일탈로 매도하며 공격하는 상황에 분통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책 『제7의 인간』을 통해 유럽 이주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한 영국 작가 존 버거는 “타인을 이해하려면 어떤 세계 안에 들어 있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 세계의 모습을 해체해 자기 시각으로 재조립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날조된 유언비어로 수천 명의 한국인이 학살된 아픔의 역사 앞에서 해외 이주민을 향한 우리의 ‘눈초리’에 조선인을 학살했던 일본인의 ‘살기’가 어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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