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살해 인정한 사우디, 처벌은 없다?... ‘법 위에 왕’
카슈끄지 살해 인정한 사우디, 처벌은 없다?... ‘법 위에 왕’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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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출신 언론인 카슈끄지의 살해 의혹이 전해진 지 18일 만인 지난 20일(현지시각)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의 살해 혐의를 인정했다. 그동안 관련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해 왔지만 발뺌할 수 없는 정황증거가 잇달아 공개되면서 일단 살해 혐의는 인정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해당 사건을 사우디 내 특정세력의 개인 일탈로 치부해 사건의 유력한 배후로 지목되는 왕실은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다.

지난 18일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됐으며 이와 관련해 자국민 18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용의자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이들이 왕실과 관계가 없다고만 주장하면서 진상 규명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아델 아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지난 21일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슈끄지의 피살과 관련된 이들이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을 했다”며 “이들 가운데 누구도 무함마드 왕세자와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왕세자 엄호에 나섰다. 사우디 왕실이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를 계획적으로 살해했고, 그 배후 몸통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라는 세간의 의혹을 강하게 반박한 것이다.

터키 언론은 사건이 벌어진 지난 2일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이 포함된 ‘암살팀’ 15명이 전용기를 이용해 사우디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와 주이스탄불 사우디 대사관에서 카슈끄지를 고문·살해하고 사우디 대사관저(시체 유기 추정 장소 )를 거쳐 당일 귀국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우디 언론은 사건 당일 이스탄불에 도착한 ‘협상팀’이 카슈끄지에게 귀국을 종용하자 그가 소리를 질러 이를 막으려는 과정에서 실수로 질식사시켰다고 보도하며 같은 사건에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아직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될 카슈끄지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관련자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프랑스·독일 3개국은 지난 21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신뢰할만한 사실에 근거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며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되며, 추가적인 설명의 신뢰성에 근거해 (대(對) 사우디 제재와 관련한 ) 최종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우디를 압박했다. 미국 의회는 피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교체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랜드 폴 미국 상원 의원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카슈끄지 피살에 사우디 ) 왕세자가 연루됐으며, 그것을 지휘했다고 확신한다”며 “제재로 충분하지 않으며 왕세자가 교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국제사회의 압박이 사우디에 충분한 위협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사우디의 전제군주제가 지목된다. 전제군주제는 왕이 국가 운영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는 정치체제로서 국왕이 행정, 정치, 경제 등 국가의 모든 방향성을 결정한다. 고대 중세의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서 성행했지만, 현재는 바티칸과 아랍에미리트 등 5개 국가 정도가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제로, 이들 국가에서는 왕이 곧 법으로 여겨진다. 또 참정권조차도 허락되지 않아 선거가 치러지지 않으며 왕권을 견제하는 의회 대신 의사결정을 돕는 자문위원회가 존재한다. 헌법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국왕의 권한 행사가 가능한 입헌군주제와 달리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는 국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이번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가 사우디 왕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사우디 국내법을 적용한 처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실상 국제사회의 제재 외에는 마땅한 처벌 방법이 없는데, 사우디는 과거 국제사회의 간곡한 만류에도 집단 처형을 강행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국제사회 압박의 효력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우디는 2015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등극한 이후 권력다툼으로 심각한 내분을 겪으면서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집단 처형을 강행한 전례를 지닌다. 살만 국왕은 즉위 3개월 만에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아들 무함마드 빈살만(카슈끄지 살해 지시 의혹을 받음 )을 통해 반대파 세력 150명 이상을 처형했다. 또 2016년에는 반정부 시위 주도자를 비롯해 ‘테러 세력’ 47명을 국제사회의 간곡한 만류에도 집단 처형했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부패 청산을 내세우며 차기 왕권을 다툴 우려가 있는 왕자와 대기업 경영자, 전·현직 고위 인사 350명을 사우디 내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 수일간 구금하고 재산 헌납과 충성맹세를 받고 나서야 풀어줘 전 세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바 있다.

그간 오일머니라는 막강한 힘을 무기로 사회 분열을 막아왔던 사우디지만 최근 들어 위험 조짐이 관측된다. 사우디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부패가 급기야 균열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30여년간 중동을 취재해온 캐런 엘리엇은 책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디 사회에 분노를 느끼는 청년들이 연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우디의 외화보유고가 4,000억 달러를 웃돌고 연간 석유 수익이 2,000억 달러 이상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양질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 홍수를 대비한 하수 및 배수시설과 같은 기초 복지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오늘날의 사우디는 붕괴 직전의 소련을 연상시킨다”면서 “이슬람 종교는 한때 사우디의 안정성을 지탱하는 기둥이었으나, 알 사우드(왕실) 가문이 종교를 이용해 정치적 특권을 지탱하려는 데 큰 반감을 품으면서 지금은 사우디 국민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민주 사회 국가는 오랜 시간 동안 피의 대가를 치르며 ‘국가의 주인은 왕이나 독재자가 아닌 국민’이라는 귀중한 결과를 손에 넣었다. 인문학자 채사장은 책 『시민의 교양』에서 “민주주의는 인류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그나마 찾아낸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며 “사람은 배부른 노예가 아니라, 가난하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한다”고 전한다. 이어 “내 이익과 결부된 문제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의 권한이 없는 자는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며 “정치적 의사결정 권한을 제한하는 행위는 주인으로서 강력히 저항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공권력에 희생됐다는 정황 증거가 상당하지만, 여파를 우려한 사우디 당국은 자국 내 국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유언비어나 가짜뉴스에 대해 사이버범죄 방지법에 따라 최고 징역 5년과 벌금 300만 리얄(약 9억 원 )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 당국이 생각하는 가짜뉴스가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의 죽음에 개입했다는 진짜뉴스는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우려를 내놓으며 입단속에 나선 사우디 당국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카슈끄지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칼럼에서 강조한 ‘아랍의 언론 자유’가 하루빨리 현실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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