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늘 새로운 것을 찾아라”… 재미동포 화가 한순정의 80년 작품사
[포토인북] “늘 새로운 것을 찾아라”… 재미동포 화가 한순정의 80년 작품사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0.17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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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정의 『바람개비 정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나의 80여 년 삶을 돌아보면 순풍에 돛을 단 인생은 아니었다. 젊어서는 1960년대 초 미국 이민 1세로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노년에는 머리를 다친 남편을 돌보느라 10년 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원하던 대로 화가가 됐고 지금까지 작품 활동도 지속해 왔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재미동포 화가 한순정(황순정)의 그림에세이다. 국내외 16차례 개인전과 메릴랜드주 정부청사 초대전’ ‘스미소니언 동인전등 수십 회 이상의 개인전에 참가한 다작가다. 이 책에는 그의 인생을 알 수 있는 에세이와 함께 모노타이프 판화, ‘종이 엮기를 활용한 작품 등 73점의 작업이 담겨있다. 작품에 임할 때마다 화가 정규 선생이 늘 새로운 것을 찾아라라고 말한 것을 되새긴다는 그답게 독창적인 작업이 많다.

[사진출처= 오르골 출판사]

'밤 행군'(Knight March, 1981). 작가의 피난생활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우리 세대는 모두들 가난했고 전쟁 중에 잔뼈가 굵었으니 복 받은 세대로 볼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전시에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한 덕분에 지역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새로운 체험을 할 기회와 기쁨도 얻었다. 또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집이나 학교가 좁아도 참을 만했다고 적었다.

[사진출처= 오르골 출판사]

'아서와 흔들의자'(Arthur on Rocker, 1971). 미국에서의 결혼생활은 고단했다. 처음에는 작가가 먼저 일을 했고, 남편은 학교에 다녔다. 남편이 학위를 받을 즈음 작가는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아이를 낳기로 했다. 남편이 직장을 구했으나 초봉이 낮아 우유를 살 돈도 충분치 않았다. 작가는 언제나 편한 날이 올까 기다려도 세월만 가고 그 수렁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출처= 오르골 출판사]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깍지 낀 팔’(Arms Folded, 1995), 부끄러움(Shyness, 1984), 나목(Naked Trees, 1996), 자화상(Self-portrait, 1965). 작가는 대학시절 재학생 신분으로 개인전을 여는 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미술을 공부한 여성들의 생애가 대체로 비참했기 때문인지, 그의 아버지는 미술을 전공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작가가 졸업 후 미술 쪽으로 취직하자 그는 부모님에게도 인정받았다.

[사진출처= 오르골 출판사]

'생의 찬미와 안장'(Blessing of Life & Burial, 2016). 2012년 두 번의 뇌수술을 받는 등 쇠약해진 남편은 2015년 걷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병원의 전문 상담사는 남편을 근처 요양원으로 보내고자 했지만,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렇게 세상물정 몰라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냐고 걱정하던,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 말하던 남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바람개비 정원
한순정 글·그림오르골 펴냄2231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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