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통일에 적극적일까... 독일에서 ‘답’ 찾다
교회는 왜 통일에 적극적일까... 독일에서 ‘답’ 찾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10.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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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봉수교회. [사진출처=연합뉴스]
평양 봉수교회.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한반도 운전자론’(남·북한이 통일의 주도권을 쥐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대북 기조)을 주창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기미가 눈에 띈다.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취한 미국과의 불협화음 속에서도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대북 지원이 재개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비핵화를 넘어 통일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프랑스를 국빈방문(13~16일)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파리 대통령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따를 경우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와 핵물질 모두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며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유엔 제재 완화에 나서야 하며, 이때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주요한)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북한이 실제 비핵화에 돌입할 경우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포석을 마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이런 포석 마련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 과거 숱하게 북한에 속았던 경험에 미국은 아직까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번이야말로 통일의 물고를 틀 다시없을 기회라고 인지하는 눈치다. 약간의 한미 갈등을 무릅쓰고서라도 통일을 향한 화해 분위기를 지속할 속셈으로 비친다.

이런 분위기 속에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대북지원 움직임이 엿보인다. 15일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007년 착공했지만 5.24조치(2010년 천안함 피격으로 모든 대북 협력 중단)로 중단된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의 공사 재개가 전망된다는 연합뉴스TV 보도가 나왔다. 이어 16일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북한 전역에 200여 개의 보건소를 세우는 사업이 논의될 예정이라는 연합뉴스TV 보도가 뒤이었다. 이는 지난 10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관계부서에서 5.24조치(2010년 천암함 피격으로 인한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지난달 이뤄진 평양 회담에서 보건의료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한 점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은 “(대북 협력 사업 관련해서)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바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상당수 사람은 “민간교류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북 협력 사업에서 한국 교회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간 한국교회는 의료, 교육, 자선 사업을 아울러 다양한 부문에서 자선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 교회는 ‘조용기심장전문병원’(지하 1층 지상 7층·9,000평 규모) 등 의료기관 설립을 비롯해 의료 사역팀을 북한에 파견해 의료 활동을 벌였으며, 북한 유치원, 고아원 등을 지원하는 자선 사업도 활발히 전개했다. 국제제재가 심해지면서 예전보다 대북 지원이 어려워지기는 했으나, 현재도 일부 선교단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아동 시설에 식량과 의약품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교육 지원으로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 대표적인데, 평양과학기술대학교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본 한인교회 (Vaughan Community Church)와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 등 다수의 한국교회가 주축이 돼 2009년 평양에 설립했다. 700여 명의 학생과 130여 명의 외국인 교수, 200여 명의 직원이 함께 생활하며 국제적인 학술교류의 장을 구성하고 있다.

교회가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는 과거 독일 통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책 『독일 리포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동·서독으로 갈라졌지만 독일교회협의회는 분열되지 않고 동·서독을 잇는 합법적인 기구 역할을 감당했다. 서독 교회는 1950년대(1957~1989년)부터 동독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 양로원, 요양원 등 사회봉사 기관에 재정을 지원했는데, 그 규모는 14억 달러(현재 환율로 1조6,000억 원)에 달한다. 이 외에 같은 기간 14억 달러 가량의 원자재 지원도 함께 이뤄졌다. 당시 서독 정부가 동독을 지원하는 통로가 교회로 집중됐기 때문에 서독의 지원을 받은 동독 교회는 동독에서 가장 풍족한 자원을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서독 정부는 인도적 지원 대가로 정치범 석방과 이산가족 교류 등을 추진하며 1963~1989년까지 28년 동안 정치범 3만3,755명과 25만 명의 이산가족을 상봉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교회가 주요한 중재자 역할을 감당했다.

또 1989년 여름 동독 주민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 대량 탈출하던 시기에 교회는 통일을 염원하는 동독 주민을 결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독 교회는 탈출한 동독 주민을 수용하는 역할을 맡았고 서독 교회는 매주 기도회를 개최해 통일에 대한 염원을 응집했다. 매주 기도회에는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몰렸으며 1989년 10월 9일에는 기도회에 참여한 시민이 거리로 나서 통일을 부르짖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여행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경제 제도 개혁, 자유 총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했고 1년 후인 1990년 10월 3일에는 유혈사태 없이 통일의 결실을 이뤄냈다.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도 책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는 말은 무신론자나 하는 말입니다』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동·서독으로 나뉜 독일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통일 운동이 벌어졌으며 그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곳이 바로 독일 개신교였다”고 회고했다.

비록 북한에 존재하는 교회(칠골·봉수교회)가 당국의 철저한 감시 하에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 동독의 사례와 차이가 있지만, 한국 교회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11일 개최된 ‘2018 국민미션포럼’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두 가지 큰 힘이 교회와 지자체였다”며 “평화의 전환기에 교회가 야고보서 3장 18절 말씀(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처럼 평화를 심고 정의를 거두는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통일의 기대감이 증폭된 최근, 남·북한 사이에 깊게 패인 이념과 갈등의 골을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한국 교회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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