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아날로그 육아의 즐거움 上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아날로그 육아의 즐거움 上
  • 스미레
  • 승인 2018.10.1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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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어떻게 가르쳤어?”

친구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집에 실험실이 있는지, 아이가 코딩이나 로봇 학원에 다니는지. 오랜 친구들은 느리고 감성적인 내가 과학 영재의 엄마 되었음을 신기해한다.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과알못’ 엄마이기에 과학을 주도면밀히 가르치지는 못한다. 공학도 아빠와 꼬마 과학자가 함께 하지만 우리 일상은 첨단과는 거리가 멀다. 육아 뿐 아니라 생활 전반이 그러하다.

느리고 담담한 아날로그 식이다. 

집에는 실험실이 없다. 코딩이나 로봇은커녕, TV도, 빔 프로젝터도 그 흔한 세이펜도 없다.

아직까지는 영상보다 종이가, 전자음보다 육성이 편하다. 아이는 학원 아닌 부엌에서 실험을 한다. 선풍기나 토스터 등 생활 가전을 관찰하며 기계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책과 카탈로그에서 정보를 찾고, 궁금한 것은 찾아가 체험한다. 텃밭에 물을 주고 열매를 딴다. 일상 안에서 샤워기에서 선풍기로, 청소기와 자동차로....몰입과 확장의 즐거움을 알아간다.

# 부엌 실험실

아이와 나는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낸다. 세 살 경부터 아이는 부엌에 들어와 저울과 계량컵으로 재료의 용량을 재고, 시계의 초침을 보며 조리 시간을 확인했다. 콩 꼬투리를 벗기고 쌀을 씻어 압력솥에 밥을 안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뽑은 면과 마당에서 딴 토마토로 파스타를 만든다. 캡슐, 필터, 모카 포트 등을 이용해 커피도 내려준다. 과즙이 묻은 행주의 얼룩을 과탄산소다로 뺄 때면 산과 염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팝콘을 만들며 수증기의 팽창을, 리코타 치즈를 만들며 단백질의 응고를 관찰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열의 전도와 대류, 액화와 기화, 연소의 조건, 효모의 작용, 끓는 점과 어는 점, 밀도, 압출, 증류 등 많은 개념을 체험했다. 어디 과학뿐이겠는가.

식재료의 출처와 어떤 마크를 달고 있는지를 살피며 먹거리의 안전성을 따져보는 습관도 생겼다. 쌀이 저절로 밥이 되는 것이 아니며, 배추가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시간이 필요함을 알았다. 이런저런 요리를 해보며 나름의 창의력도 자랐을 테고, 피자 한 접시에 가 본 적 없는 이탈리아를 상상한다. 책에서 본 고랭지 채소에 대해서도 부엌에서는 술술 나온다. ‘다지다, 데치다, 무치다’의 뜻을 어렵지 않게 구별한다. 여러 재료를 다루고 설거지를 하며 소 근육, 중 근육, 대 근육은 물론 마음 근육까지 발달했다. 좋아하는 일에 가장 착실히 반응하는 건 역시 마음이니까.

물론 아이를 부엌에 들이면 일이 커진다. 혼자서는 5분 만에 끝낼 설거지도 아이와 함께하면 1시간이 걸린다. 바닥은 흥건해지고, 옷은 엉망이 된다. 뜻하지 않게 인내심의 한계를 갱신하지만, 어쩌겠는가. 부엌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가 다가왔다. 틀어줄 TV가 없어 당근을 쥐어줬다. 호기심 어린 두 눈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저울을 꺼내줬다.

요리는 자립의 기초다. 이제 아이는 물 한 방울 안 튀고 능숙하게 설거지를 하며, 나보다 더 맛있게 밥을 짓는다. 부엌은 교육적인 획책이나 욕심이 없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끼니때 마다 훈김이 오르고 작은 소란이 인다. 자잘한 대화가 오간다. 버튼을 눌러 주문하고 바로 음식을 받는 패스트푸드와는 다르다.

집 밥이 각별한 추억으로 남는 건 이 때문 아닐까.

나에겐 아이와 함께하는 이 모든 것이 낭만이다. 지칠 때면, 아이가 자라 낭만이 사그라들 시점을 떠올린다. 미래의 나는 요즘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먹으며 기운을 낼 것이다. 지금의 수고는 미래의 내가 받을 선물일지도.

사실, ‘수고’를 운운하기엔 부끄럽다. 육아는 처음이라, 뭐가 좋고 나쁜지 잘 모른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쉽게 멀미를 느끼는 내게는 ‘아날로그‘ 방식이 맞음은 안다.

아이가 꺼내오는 책을 물색없이 읽어주고, 손 편지를 써준다. 맛집을 검색하는 대신 밥을 짓는다. ‘슥’ 갖다 주는 배송 대신 슬슬 장에 나가 찬거리를 둘러본다. 운전을 못해서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등원한다. 별스런 교육법은 모르지만 휴대폰에 의존하는 대신 주요 전화번호를 외우고, ‘내 차 찾기’를 누르는 대신 주차 구역을 외우는 것이 가족의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디지털 음원을 받기보다 CD를 고른다. 아이는 CD를 조심히 꺼내어 듣고 싶은 곡의 번호를 누른다. 여러 감각을 동원하는 과정을 거쳐 듣는 음악이기에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문득 직접 거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바라보던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의 뿌듯한 얼굴이 떠오른다. 감각을 사용하고, 감정을 느끼는 일은 즐겁다. 과정과 수고에는 마음이 깃든다.

아이도 언젠가는 ‘스마트한’ 세계에 들어설 것이다. 말릴 수도, 피할 수도 없이. 다만 그날이 오기 전에, 생생한 감각과 경험을 많이 주고 싶다. 유년기는 ‘삶을 바라보는 틀’이 만들어지는 기간. 무언가를 ‘잘 하는 것’보다 그것을 충분히 탐색하고, 느끼고, 궁금해 하며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야한다. 그런 경험들이 모여 ‘삶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그보다 중한 것이 있을까. 숙달은 그 다음 단계의 문제일 테다.

그러니 어린 날에, 생생한 경험과 감각을 기탄없이 누리기를. 속도와 효용은 무시한 채,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즐거움을 흐벅지게 맛보기를. 나를 둘러싼 공간, 시간, 온도를 충분히 느껴보기를. 그 안에서 찾은 행복과 감사는 삶을 가꾸게 하고 생활에 힘을 보탤 것이다. 세계와 자신을 향한 근원적인 탐험을 가능케 할 것이다. 생존에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인간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바람은 이토록 절절하건만, 육아에 정답은 없다. 결국 헤매고 더듬어가며 길을 찾는다. 빠르고 스마트하진 않지만 이것이 아날로그 육아의 즐거움 아닐까. 내비게이션이 아닌 나의 감각과 두 다리에 의존하고, 손으로 두드려보며 나아가는 것. 잘 살고, 잘 먹고, 잘 입는 것 보다 잘 헤아리고 잘 기다려주는 것. 그렇게 획득한 미더운 마음을 동력 삼는 것.

넘어져도 일어나고 돌아가도 재지 않으면, 속도에 밀리지 않고 둘레둘레 걸어가는 힘도 조금씩 붙을 것이다. 나는 느리게 자라는 엄마다. 최첨단을 달리진 못한다. 하지만 오늘도 아이와 함께, 꿈을 심은 땅에 발 딛고 땀 흘리며 살아간다. 근사한 일이다.

(다음 회에 ‘아날로그 육아 下‘가 이어집니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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