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래이첼 맥알파인 “나이 듦을 모험하고 삶을 노래하라”
[인터뷰] 래이첼 맥알파인 “나이 듦을 모험하고 삶을 노래하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10.0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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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작가 래이첼 맥알파인이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자신의 시를 읽고 있다.
뉴질랜드 작가 래이첼 맥알파인이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자신의 시를 읽고 있다. [사진= 이태구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래이첼 맥알파인을 찾았을 때 그는 연희문학창작촌 테라스 앉아 시를 쓰고 있었다. 그의 첫인상은 누가 봐도 '작가'였다.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그를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인터넷 비즈니스 글쓰기의 선구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바 있었다. 10월 초에 뉴질랜드로 돌아간다는 그를 찾지 않을 수 없었고, 늦기 전에 그를 찾아 다행이었다.

, , 바다, 언덕/이들에게는 고유의 삶의 방식이 있다/고유의 말이 있다/바람은 목적이 있고/나무에게는 의지가 있다/별빛과 햇빛의 노래를 부르자/발에 닿는 사구(砂丘)와 잔디의 느낌을 노래하자/구름, 하늘, 흙의 노래를 하자.”

기자의 요청에 작가는 즉석에서 그의 시를 읊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이 시를 가사로 마을 합창단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시를 읽고 난 작가는 그가 매년 100권씩 제작해 지인에게 무료로 나눠준다는 시집을 기자의 손에 쥐어줬다. 100개의 시가 담겨있었다.

백발이 성성했다. 1940년생, 올해 78. “나이 드는 것을 모험하는 중이라는 이 작가의 이력은 80세를 바라본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그 빛나는 눈동자처럼 독특했다. 먼저, 엄청난 저작활동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만 수십 권. 소설 5, 시집 10, 희곡 11, 실용서적 10여 권 등 장르도 다양하다. 10년 동안 다양한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으며, 55세 때는 당시 막 세상에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을 배워 인터넷 비즈니스 글쓰기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맥알파인을 따라 들어간 연희문학창작촌. 그의 방에는 의자가 없고 책상에 노트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주로 서서 글을 쓴다고 했다. 대게는 은퇴를 생각했을 나이. 그러나 작가에게 은퇴는 아직 먼 미래인 듯하다. ‘Old Lady Laughing’ ‘Write into life’ ‘Poems in the wild’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끊임없이 글을 게재한다. ‘Old Lady Laughing'에는 삶의 지혜가 담긴 수필 형식의 글이. ‘Poems in the wild’에는 그의 시가, ‘Write into life’에는 작가의 서울 생활이 올라온다. 수익은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본인과 독자들의 행복을 위해 쓴다고 했다. 기자가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치 우리 할머니 같다고 말하자 수줍게 웃었다.

[사진= 이태구 기자]

-블로그 ‘Write into life’에 서울 생활을 담은 사진과 글이 자주 올라오던데, 서울 생활은 어떤지

서울에 온 지 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멋진 경험을 하고 있다. 지금 머무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작가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것 같다. 이 주변 경관이 특히 마음에 들기도 한다. 연희문학창작촌 주변을 걷고 있자면, 곳곳에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듯한 이국적인 길들을 찾을 수 있다. 연희동 밖의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에는 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이국적인 미()가 있다. 또한, 여태 많은 도시에서 살아본 경험에 비춰볼 때, 보통 이국적인 곳은 위험했다. 그러나 서울은 다르다. 치안이 좋아 서울의 아름다움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서울의 어떤 점이 그렇게 이국적이라고 느꼈는지

일단 사람들이 아주 친절하다. 오늘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어를 잘 못 읽어 살 물건을 못 찾고 있었는데, 물건을 찾을 때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사람들이 와서 친절하게 도와줬다. 또한, 도처에 첨단기술이 있는 현대적인 모습과 한옥 지붕, 돌담 등 옛 모습이 섞여 있는 것도 이국적이었다. 예를 들면 북촌한옥마을 같은. 뉴질랜드와는 다르게 화려하고 우아한 한국 여성들의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펑퍼짐하고 편한 옷과 달리 대부분 한국 여성들은 늘 격식을 갖추고 우아하게 입고 다닌다. 한국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일부 한국 여성들은 최근 사회적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스러움코르셋이라 부르며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국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만, 한국 여성들이 입는 옷에는, 혹은 입으려는 옷에는 분명 여러 가지 사회적 함의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 여성들이 입는 옷이 과하게 미적으로 치중된 면이 있는 것도 같다. 매일같이 거리에 나가보면 한국 여성들은 화려한 화장에, 백이면 백 과하게 잘 차려입었다. 물론, 모든 여성은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을 자격이 있고, 그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항상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마 한국의 여성들이 입는 옷이나 치장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은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만약 그런 것이 한국 고유의 문화라면, 존중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뉴질랜드의 상황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뉴질랜드에서는 여성이 뭘 입든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편한 옷을 봐라. 뉴질랜드에서는 오히려 남성에게 더 많은 사회적 의무를 부여한다고 느낄 때도 많다.

질문과는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나는 나이 든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런 과한 패션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 늘 화려하고 아름답게 차려입다가 나이가 들어 그렇게 하지 못하면, 노년에는 꽤나 비참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자연스러운 것이 더욱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에게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게 더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블로그 활동, 저술 활동이 전성기 작가라고 할 정도로 왕성하다. 77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데

내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걷기도 전에 요람에서 뛰쳐나왔다. 7살 때 내 장래희망은 탐험가였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저는 죽는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후세계는 마치 가보지 않은 나라처럼 아무도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이며, 그곳에 간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지 않은가.

가족 내력도 있는 것 같다. 내 증조모께서는 급진적인 여성인권운동가셨다. 나도 물론 페미니스트이고, 크고 작은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했지만, 내 증조모께서는 뉴질랜드의 여성참정권을 이끌어 낸 여성 리더 케이트 셰퍼드의 바로 옆에서 활동하셨던 분이다. 한국에 번역되진 않았지만, 내 소설 Farewell Speech20세기 초 내 증조모와 여성인권운동가들의 실제 활약상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뉴질랜드의 여성인권운동가들은 마을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돌며 여성참정권 찬성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그 서명이 레드카펫 길이만큼 됐을 때 국회 앞에 마치 레드카펫처럼 깔았다. 의원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게 말이다.

호기심이 많은 내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쉽게 판단 내리지 않는다. 겁이 없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이상한 것을 봤을 때 대게는 어머나, 대체 왜 저럴까?”라고 반응하지만 나는 , 흥미롭네하고 그것을 관찰하는 편이다.

-‘인터넷 비즈니스 글쓰기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55세의 나이에 처음 접한 인터넷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말했듯, 내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이 개발되기 전에 마을에서 거의 가장 먼저 초기 컴퓨터를 산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인터넷이 개발됐고, 처음 인터넷을 맞닥뜨렸을 때 작가로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글쓰기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겠구나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글 쓰는 방식에 있어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게 변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결국 내가 맞았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읽는 것과 종이책으로 읽는 것은 눈을 움직이는 방식부터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방식까지 모두 다르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라면 좀 더 독자들의 이해가 쉽게끔 명확해야 하고, 단순해야 했다.

한편, 내가 인터넷 비즈니스 글쓰기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운도 작용했던 것 같다. 막 개발되기 시작한 때 인터넷을 접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차근차근 인지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늦게 접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급진적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따라서 인터넷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진= 이태구 기자]

-소설, , 실용서적, 참 다양한 글을 쓴다. 장르를 넘나드는 일이 어렵지는 않은지

나는 뭔가에 흥미가 생기면 그것을 무조건 써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에게 글쓰기는 일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일종의 놀이다. 처음은 시로 시작했고 지금도 시를 꾸준히 써 매년 한 권씩 100개의 시가 담긴 시집을 내고 있다. 어릴 때나 시간제 근무를 할 때는 아주 바빴다. 당시 시 쓸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를 먼저 쓰게 된 것도 있다. 사실 내 머리는 온종일 시로 가득 차있어서 시 쓰기란 나에게 숨쉬기나 마찬가지다. 반면, 소설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며 한 편을 완성하는 데는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온전히 그 한 권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훌쩍 떠나는 것이 좋다.

-한국에 번역된 책이 없는 것이 아쉽지는 않은지

일본어로 번역된 Farewell Speech와 몇권의 실용서적을 제외하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은 없다. 한 작품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도 5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된다면 영광일 것이다.

-뉴질랜드 예술만의 특징이 있다면

뉴질랜드 예술의 특징이라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다양성을 들 수 있겠다. 900년 전 뉴질랜드에 처음 발을 디딘 마오리족과 영국에서 온 백인 등 초기 뉴질랜드인은 우리가 누구인지’ ‘뉴질랜드는 어떤 국가여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그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예술 속에 녹아 있다. 또한, 뉴질랜드 국민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융화시키기 위해 다양성 측면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다양성역시 뉴질랜드 예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추후 활동 계획은, 혹은 인생 목표가 있다면

나이 든다는 것, 늙어가는 것을 모험할 생각이다. 세부적으로는, 매년 100편의 시가 담긴 시집을 내는 것이 목표다. 또한 당분간은 저작활동보다는 운영 중인 블로그에 집중할 생각이다. 내 블로그는 마치 어머니 같다. 때로는 내 온전한 기쁨을 위해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독자에게 조건 없이 좋은 정보를 준다.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나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뉴질랜드 문학을 추천해준다면

피오나 키드만의 1979년 소설 A breed of women은 초기 뉴질랜드의 사회상을 잘 담고 있다. 2016년 출간된 애슐리 영의 에세이 Can you tolerate this?는 작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뉴질랜드에서 한 명의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며 느끼는 정체성 혼란과 감정의 움직임을 잘 담았다. 좀 더 쉬운 책을 찾는다면 내가 쓴 소설 Fixing Mrs Philpott을 추천한다. 쉬운 영어로 써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의 큰 지진과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로부터 도망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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