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8.10.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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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
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시내버스가 신호등 앞에 잠시 정차했을 때다. 무심코 차창 밖으로 바라본 시내 어느 커피숍 옆 골목 안, 그곳 초입에 젊은 두 남녀가 부둥켜안은 채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히 보인다. 이 광경을 나만 본 게 아닌가 보다. 내 앞에 앉은 어느 초로의 아주머니도 두 사람의 행동이 몹시 민망한 듯 갑자기 혀를 세차게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요즘 젊은이들, 벌건 대낮에 그것도 길거리서 서로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난리니 참, 낯 뜨거워서 눈 둘 곳이 없네”라는 말에 문득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년~1917)의 작품 ‘키스’가 눈앞을 스치는 것은 젊은이들의 포즈가 꼭 로댕의 조각상을 닮아서다.

이 조각은 두 남녀가 절벽 위에 위태롭게 앉아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다. 로댕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향을 받아 작품 ‘지옥의 문’ 구상을 위해 만든 작품이다. 얼마 전 사진을 통해 이 조각상을 본 나는 차디찬 대리석에 조각된 형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조형미와 그 정교함에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걸음 조각상 앞으로 다가서면 남녀의 뜨거운 숨결이 곧 귓가에 들릴 듯한 착각에 나도 모르게 귀를 모았다. 조각상은 전라(全裸)의 두 남녀다. 남자는 오른쪽 팔로 여인의 대퇴부 쪽을 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다. 한편 남자의 품에 안긴 여인이 왼쪽 팔로 남자의 목을 한껏 휘감은 채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은 조각이라기보다 흡사 살아 움직이는 인체 같았다. 이 조각상을 찬찬히 바라보노라니 가슴 속 깊이 감췄던 로맨틱한 감정이 절로 솟구쳐 갑자기 가슴이 달아올랐다. 

로댕의 유명한 작품인 이 조각상은 로댕이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의 사랑이었기에 애욕의 극치마저 엿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남녀는 오랫동안 사랑하는 마음을 서로의 가슴에 은밀히 감춰온 시동생과 형수 관계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가슴 속에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사랑의 열정을 주체 못 하고 어느 순간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격렬한 키스를 나눈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 등장하는 이들이 나눈 불륜의 대가는 참으로 혹독했다. 두 사람은 비참하게 살해된다. 결국엔 지옥에 떨어져 서로를 끌어안은 채 떠도는 영혼이 되고 만다는 슬픈 내용이 아니던가.

로댕의 ‘키스’, 이 조각상을 떠올리노라니 새삼 사랑의 실체에 궁금증이 인다. 사랑은 달콤하고 감미롭지만 때때로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기도 하잖는가. 흔히 플라토닉 러브도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이즈막 서구적 성개방화 물결 탓인지 정신적 사랑은 절름발이 사랑이 된 지 오래다. 철인(哲人) 플라톤이나 혹은 플라톤 학파의 사유(思惟)에서는 육욕을 동반 않는 영혼의 에로스(愛) 만이 진(眞)이며 선(善)이고 미(美)였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향연』에서 정신적 사랑은 격정적일수록 신(神)이 기뻐한다고 격찬한 게 그것이다.

플라톤의 이 언술은 육욕(肉慾)을 초월해 정신적 사랑이 견고할 때 비로소 정념(情念)·애욕(愛慾)·애증(愛憎)이 연소(燃燒)된 진정한 사랑이 이뤄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선 육체와 정신이 합일(合一)될 때 완전한 사랑이란 주장이 강하다. 그렇다면 남녀의 신성한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애욕도 사랑이란 말인가? 아직 이 나이에도 나는 사랑이 품은 신비스러운 본질과 그것에 내재한 수수께끼를 쉽사리 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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