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선영화... 하나만 고르자면 ‘남한산성’
추석 특선영화... 하나만 고르자면 ‘남한산성’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9.2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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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영화 스틸컷>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20여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방영하는 TV 특선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방송 일정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원하는 콘텐츠를 편한 시간에 골라볼 수 있지만 그때는 달랐다. 명절에 특선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방송사가 임의로 정한 시간에 일정을 맞춰야 했다.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은 신문 한 면을 할애한 TV 편성표를 훑어보며 점찍어둔 영화의 방송 시간을 기억했다. 생각해보면 많이 불편했다. 용변이 급해도 주요 장면을 놓칠세라 영화 1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행여 중요한 순간을 놓쳐도 되돌려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재미가 상당했다. 공중파 방송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성우가 더빙한 외화도 재밌는 볼거리 중 하나였다. 

TV 채널권을 놓고 벌이는 협상도 명절의 진풍경이었다. 지금이야 핵가족화가 심화되면서 명절마다 여행을 떠나느라 공항에 인파가 몰리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할머니를 중심으로 대식구가 한집에 모여 먹고 자며 함께 흥을 나눴다. 저녁 10시 즈음 특선영화 황금 시간대에는 한국영화 파와 외화 파로 나뉘어 실랑이를 벌였다. 직장인 김정민(33·남)씨는 “어릴 적 명절이면 큰삼촌 집에 할머니와 7남매, 그리고 그 자녀들이 모여 방과 거실을 빼곡히 채웠다”며 “저녁 특선영화 시간에 외화를 고집해 시청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그때 한국영화를 보고 싶어 했던 삼촌이 “역시 말 타는 사람 나오는 서양 영화는 무조건 걸러야 해”라고 핀잔을 줬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올해는 어떤 명절 특선영화가 추억으로 남을까? 

이번 추석에 주목할 TV 특선영화로는 ‘남한산성’을 추천한다. 오늘밤 10시 40분 tvN에서 방송하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청나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서울)을 향해 진격해 오면서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에 고립돼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된 상황에서 영화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는 치욕을 견디고 항복해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분)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 ‘인조’(박해일 분)의 모습을 그린다. 원군을 보내 임진왜란을 승리를 이끌었던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는 김상헌과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신의가 무슨 소용이냐고 주장했던 최명길의 대립이 팽팽하게 맞섰다. 

영화는 김훈의 동명 소설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선 조선의 위태로운 상황을 묘사한 김훈 작가의 필력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책을 먼저 접한 사람은 영화를, 반대의 경우에는 책을 찾을 정도로 긴 여운과 생각거리를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기 전, 소설 『남한산성』의 판매량은 일 평균 12.5권(알라딘 집계)였지만 영화 개봉 후에는 55.5권으로 크게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영화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한반도를 지정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조선 시대나 현재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가 개봉할 즈음 김훈 작가는 “지금의 (한반도) 위기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당시는 명·청 갈등뿐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에 남·북 대결까지 있다. 당시에는 이념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고 현 상황을 무겁게 인식했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난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방남이 추진되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정세가 늘 그렇듯 언제까지 유화적인 분위기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정치를 논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특히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한데 모인 명절에 툭 하고 튀어나온 정치적 화두에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제시하는 치욕스런 역사 앞에 현시대를 사는 우리 각 세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눠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오랜만에 한데 모인 각 세대가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는 한가위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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