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사랑이 습관이 돼버린 당신께… 도리스 레싱 단편선
[지대폼장] 사랑이 습관이 돼버린 당신께… 도리스 레싱 단편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9.19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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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그동안 역동적이고 독자적인 삶을 경험했다. 내가 처음 이 작품들을 쓴 뒤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많이 소개된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동굴을 지나서만큼 여러 선집에 포함된 작품은 없다. 특히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책에 많이 실렸다. 그 덕분에 이 작품과 관련된 어린이들의 편지가 자주 날아온다. 청소년들의 편지도 많다. 바닷속 바위 아래에서 헤엄을 치는 무서운 장면이 아이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7>

1947년 조지는 마이러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전쟁도 다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하자는 내용이었다. 마이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는 친척이 있는 그곳에서 1943년부터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편지에서 마이러는 자신과 조지의 사이가 시나브로 멀어진 것 같다면서, 이제는 자신이 조지와의 결혼을 원한다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조지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마이러에게 비행기 값을 부쳐주고는 그녀에게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에 2주 동안만 영국에 머무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의 날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영국의 날씨는 이제 싫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이제 한물간 것 같다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런던을 그리워하는 편이 익숙하다고 말했다. 조지 탤벗을 그리워하는 일에도 익숙해진 듯했다. <15>

남자와 여자가 골목의 작은 호텔에서 대로를 향해 걸었다.

아직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나무들은 검고 차가웠지만 얇은 가지들은 봄을 맞이하려고 부풀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위를 보는 시선에는 반짝이는 초록색 새순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차분했다. 하늘도 차분하고 고전적인 파란색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며칠 동안 게으르게 지낸 탓인지, 애써 뭔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거의 길로 나서자마자 카페에 들어가 기진맥진한 사람들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카페는 거리를 향해 불쑥 나와 있는 모습이었다. <149>


사랑하는 습관
도리스 레싱 지음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펴냄384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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