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10회)
소설 춘천옥 (10회)
  • 김용만
  • 승인 2008.02.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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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6월 15일. 드디어 서울경찰청 인사과에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10년간의 경찰생활을 끝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표를 만류하는 상사들이 고마웠다.
  “자네처럼 유능한 정보형사가 왜 이래? 서울대학교가 연일 시끄러운데 채증을 누구한테 맡기란 말야?”
  업무를 핑계 댔지만 사실은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걱정하는 말이었다. 자꾸 눈물이 난다.

  퇴직금을 받았다. 225,000원. 처음 만져보는 목돈이다. 그 돈으로 우리집 다섯 식구가 살 셋방을 구해야 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임시 시골 누나네 집에 모셨다. 사돈댁에 미안하고, 누나 시집살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리가 잡히는 대로 모셔올 작정이었다. 
  아내, 아들, 딸, 3식구를 데리고 원주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아무 대책 없이 공군 동기생이었던 헌구를 찾아 무작정 부산행 기차를 탔던 것이다. 헌구는 부산 출신 깡패. 몸은 깡깡하지만 악발이었다. 웃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어서 간호사였던 애인도 그 은은한 미소에 홀딱 반했던 것이다.
 
 내가 헌구를 처음 만난 건 대전 유성에 있는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에서 머리를 빡빡 깎고 교육과 훈련을 받을 때였다. 당시 우리 내무반에는 두 싸움패가 있었는데 서울패와 부산패인 그들은 주도권을 놓고 늘 으르렁거렸다. 취침점호가 끝나는 밤이면 두 패가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바람에 헌구와 친한 나는 서울패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느그들 기용이 손대믄 직인다. 알갔나?”
   그런 식으로 헌구가 늘 나를 옹호했지만 서울패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무 때고 손봐주겠다는 눈치였다. 서울패들은 연병장에서 나를 볼 때마다 침을 이빨 사이로 찍찍 내갈기며 째려보곤 했는데, 헌구 역시 그런 기미를 미리 알아채고 내 주위를 살피며 엄호해주었다.

 
▲ 그림 송대현     © 독서신문
헌구가 그처럼 나를 보살펴주는 이유는 내가 그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후지고 칙칙해서 콩콩 튀는 애인의 정서에 맞지 않았다. 드디어 끝을 내자는 애인의 편지가 날아왔고, 그날 헌구는 머리를 막사 벽에 쾅쾅 박으며 왕머구리 같은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 모습이 가여워 자진해서 편지 대필을 맡았던 것이다.
  “내가 네 깔치 맘을 돌려놓을 테니 걱정 마. 세월이 여류하여 어느덧 꽃피는 춘삼월이.... 그 따위 글로 여자 맘을 사겠어? 그런 글은 케케묵은 풍월이라구.”

   나는 밤잠을 설치며 편지를 다듬었다. 세 번째 편지부터 애인의 답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였다. 헌구는 자기를 사랑한다는 내용이 적힌 애인의 편지를 들고 내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본 서울패 왕초가 밤에 나를 몰래 막사 밖으로 불러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왕초의 뒤를 따랐다. 만약 나한테 손대면 헌구를 불러낼 참이었다. 그런데 왕초는 나를 우물 가로 데려가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뜻밖에도 이런 말을 했다.
  “내 깔치한테도 연애편지를 써 도오. 그리고 너도 서울서 학교를 다녔는데 나와 한통속이 돼야잖아.”
  나는 서울패 왕초의 연애편지를 써주고 나서 이튿날 양쪽 두목을 막사 뒤로 불러내어 화해를 유도했다. 헌구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서울 왕초가 그 뻣뻣한 손을 곱게 잡아주었다.
 

  부산은 한창 개발 붐을 타고 있었다. 초량역도 철거되고 철길이 걷힌 땅은 구획정리가 한창이었다. 헌구의 집은 영주동에 있었다. 3층집이었다. 아직도 셋방살이를 면치 못했나 싶었는데 그가 느닷없는 말을 했다.
  “좀 벌었제. 다 내 껀기라.”
  이태 전만 해도 전세살이 하던 그였다.  
  “히야! 대단하구나. 뭘로 왕창 번 거야?”
  “그거에 손 좀 댔다이.”
  “마약?”
  “내가 그런 짓 할 놈이가. 일제 옷을 몇 탕 했지.”
  “지금도 손대니?”
  “벌써 집어쳤데이.”

  지금은 세차장을 운영하는데 밀수보다 벌이가 낫다고 했다. 그날 밤 헌구는 나를 위해 환영파티를 열어주었다. 세차장 직원들과 자기 친구들을 불러 놓고 나를 한껏 추켜세웠다.
  “야는 무서븐 친군기라. 한국 잇찔 형사였다이. 내캉 함끼 사업하겠다고 그 쎈 직장을 팽개치고 부산에 내려온 기라. 내 말이 뭔 뜻인지 알갔제? 내가 부산 바닥을 휘잡고 있지만도 야 의리에는 꼼짝 못한다카이. 멋진 놈이제. 연애편지도 잘 쓰고.”

  헌구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줄줄 엮어나갔다.
  “야가 어떤 인간인지 아나? 일등병 시절에 참모총장을 찾아갔는기라. 참모총장이 김구 선생 아들 아이가. 그분한테 찾아가서, 공군 일병 김기용 신고합니더. 지가 국방 의무를 필하는 대신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늙은 부모님이 기아선상에 놓여 있심더. 그라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각하의 은혜로서..... 그래갖고 참모총장이 군종감한테 지시해서, 군종감이 야를 불렀는기라. 우째 부모가 그리됐능가 물으니까네 야가 기구한 팔자를 줄줄 엮어나갔지러. 그래갖고 상병으로 제대했다카이. 똑똑한 놈이제. 그후 내가 40보급창에서 운전병을 하는데 서울 공군본부 기상부에서 근무하던 놈이 제대복을 입고 낼 찾아왔는기라. 느그들 기상부가 먼지 아나? 일기예보하는 곳, 알제? 암튼 사정을 알고 보니까네 야가 군대 있는 동안 부모님이 살 곳이 없어 뿔뿔이 헤어졌는기야. 아부지는 공주 마곡사에서 절머슴살이하고, 어무이는 나므 집에서 더부살이하고 계신기야. 참담하제. 그래갖고 쫄짜인 내가 부대 기름을 몰래 빼내서 야를 먹여살렸잖나. 그걸 또 은혜니 머니 해싸면서 야가 나를 고맙게 여긴다카이. 알갔제? 내가 이런 사낸기라. 그럼 인자부터 느그들 인생 공부 하라꼬 이 친구 팔자를 얘기해 줄테니까네 귀담아 듣거래이. 알제?”

  “좋심더. 얼마든지 얘기하이소. 밤새 들어줄 테니까네.”
  세차장 직원들 술좌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 친군 충청도 부여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갖고,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지만도 가난해서 중학교에 몬 갔는기라. 그라이 환장하잖캈나. 삶은 고구마 싸들고 무작정 대전으로 튄 기야. 쬐멘한 아가 부모 몰래 가출했으이 그 심정 어떻겠나. 그란데 기차를 탄 거이 하필 하행열찬기라. 상행열차같으모 서울로 갔을 거 아이가. 돈 한푼 없으이까네 차푠들 샀겠나. 차장이 검표하러 다니모 변소로 튀고 의자 밑에 숨었지러. 그래갖고 새벽에 처량역에서 내렸는데, 느그들 초량역 알제?”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알고말고예. 철거된 지 얼마나 됐다고 모르겠능교. 부산진역캉 초량역이 우리들 아지트였지라요.”
  세차장 박군이 말을 받았다.
  “아지트라? 머하던 아지트노?”
  “뻔하잖능교.”
  “뻔하다? 느그들 소매치기했나? 소매치기 맞제?”
  “도둑질은 아이오.”
  “그라믄 앵벌이가?”
  “퍼뜩 얘기나 하소.”
  “내가 한심한기라. 저런 앵벌이놈들캉 한솟밥을 먹으니까네.”
  “친구는 그담에 우찌 됐능교?”
  박군이 이야기를 거듭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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