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지붕위에 올라가 잠자게 하라
남편을 지붕위에 올라가 잠자게 하라
  • 독서신문
  • 승인 2008.02.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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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엮음『참 아름다운 도전』을 읽고

▲ 김혜식(수필가)     ©독서신문
 흔히 우린 객관적 잣대보다 주관적 잣대로 타인의 인격을 재기 일쑤다. 하여 정작 훌륭한인물을 몰라보고 지나칠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상대가 고매한 인품과 능력을 갖췄어도 그것을 제대로 알아볼 혜안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눈뜬장님에 불과하다.

  마음 그릇이 작아 상대방을 제대로 못 알아보면서도 우린 걸핏하면 주변에 참다운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매우 힘들다. 심리가 워낙 교묘하고 변화무쌍한 게 인간 아닌가.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에서 적으나마 상대의 품성을 짐작할 따름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인간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나온다’ 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성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두고 주위의 평가가 벌써부터 분분하다. 어떤 이는 나를 두고 가슴이 따뜻한 여자라고 한다. 또 어떤 분은 여장부라고도 칭한다. 어디 그뿐인가. ‘불의를 보면 못 참아 바른 말을 잘 한다’ 라는 평도 있다. 돌아보건대 나는 그 어느 평도 내 자신에게 걸맞는 게 없다. 모두가 나에 대한 과대평가라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부끄럽다.

  다만 내세울 게 있다면 어려서 겪은 뼈저린 가난 때문에 남의 배고픈 사정을 잘 헤아리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남의 고충이나 애환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나 할까.

  내가 여장부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비록 여자라도 소소함에 연연하지 않는 비범함을 지녀서라는 평도 있는데 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내 가슴에 말 한마디라도 크나큰 상처를 준 사람을 나는 잘도 기억한다. 어찌 보면 소인배(小人輩) 아닌가. 허나 말 한마디라도 내게 따뜻하게 건네 준 분의 고마움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여인이다.

 그렇다면 정작 여장부는 어떤 여인일까? 여자라도 대의명분이 뚜렷한 큰일을 행한 사람이 아닐까? 이에 생각이 미치자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여인들은 과연 어떤 일들을 해냈을까?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나의 궁금증을 풀어 줄 『참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책을 읽고 나는 이제라도 더욱 나의 마음 그릇을 한껏 키워야 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은 ‘세상을 뒤바꾼 여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단 총 2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그 2권의 책장을 장식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남성들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훌륭한 일들을 이룬 여인들의 이야기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의 엄청난 도전 정신에 놀라움을 감출 길 없다. 그 중에서 여성들을 다산(多産)으로부터 해방 시킨 ‘마거릿 생어’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1879년 9월 14일, 미국 뉴욕 코닝에서 가난한 집안의 11번째 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다산(多産)으로 말미암아 건강을 해쳐 마흔 아홉에 운명을 달리 했다. 이에 비해 그녀의 아버지는 80대가 되도록 인생을 즐기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생어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그녀가 결혼 후 자신도 세 아이를 낳자 늘 어머니처럼 다산을 대물림 할까봐 노심초사 한 흔적이 책 속에 역력하다.

 당시 미국은 의료수준이 낮아 산욕열로 죽는 산모가 많았다고 한다. 다산(多産)은 여자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빼앗을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생어는 어떻게 하면 여성을 질병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편이 없을까 생각 끝에 섹스와 임신을 분리해야 함을 깨달은 듯하다.

 성생활을 해도 임신이 안 되는 방법은 피임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생활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그때도 역시 남자들은 안팎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데 반해 여성들은 윤리와 임신이라는 굴레를 쓰고 ‘아이 낳는 기계’로 살람 만 하는 종신 노예 생활을 면치 못했으니 말이다.

 살정자제 주입, 질 좌약을 삽입 하는 화학 요법, 배란 기간을 계산 하는 법, 콘돔 등 여러 방법이 19세기에 이미 개발됐다고 한다. 허나 의사들조차 피임에 대해 전혀 모른 체 했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생어는 ‘산아제한 운동’이라는 해괴망측하고 탈법적인 운동을 하였다. 요즘처럼 아이를 적게 낳아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에선 그녀의 그런 운동은 썩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허나 여자를 오로지 아이 낳는 기계로 만 치부했던 그 시절에 비춰 볼 때 그 운동으로 인해 여성의 위치는 많이 상승 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이젠 아이를 너무 적게 낳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오를수록 아이 낳는 것을 꺼리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아이를 너무 많이 낳게 하는 남편들이 원망스러워 생어는 그 시대 남성들한테 밤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잠을 자라고 엄포를 놨었다.
현대에 그런 말을 한다면 아마도 생어는 몰매를 맞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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