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를 살아낸 만인의 족보
역사의 소용돌이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시화하여 인간과 역사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20세기 세계문학 최고의 기획’(r.하스)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는『만인보』의 21~23권이 출간됐다.
1960년대 4.19혁명기를 살아낸 인간군상을 중심으로 거대한 벽화의 한 장을 펼쳐 보이는 이번 21~23권은 혁명을 이끈 주축인 학생들과 반대편의 부패한 정권 실세들을 핵심에 두고, 그 주위를 떠돌며 같은 시대를 살아간 뭇별처럼 많은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순간을 포착했다.
이번 세권에서 시인이 그려낸 것은 흘러간 시간 속에 못박인 ‘그 사람들의 한 순간들’이다. 그러나 이 순간들이 모여 이룩한 1960년대라는 격동의 시간도 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짧은 한 시기로, 역사의 한 조각으로 모자이크된다. 순간이 역사로 화하고 보잘 것 없는 개인이 역사적 사건의 일부가 되는 이 거대한 움직임을 시인은 날렵하고 엄정한 시선으로 한 편 한 편 낚아채듯 붙잡아 새겨 넣었다.
『만인보』는 정치, 사회, 도덕 같은 인위적 구분을 넘어선 법과 자연의 세계, 훨씬 더 순연한 화엄의 세계를 현실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 도도한 흐름 안에서 크고 작은 생명과 사연이 혼융일체로 저마다 빛을 발한다.
고은 지음/ 창비/ 각권 8,000원
독서신문 1402호 [200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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