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1922.8.18~)
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192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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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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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본지 · 편집위원
▲     © 독서신문
프랑스 소설가·시나리오 작가·영화감독. 브레스트 출생으로 파리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농업기사가 되어 식민지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1951년부터 글쓰기활동을 시작하여 소설 『고무지우개 les gommes』(1953),발표하며, 『엿보는 사람 le voyeur』(1955)으로 비평가상을 받는다. 도전적인 소설론을 발표하며 앙티로망(anti-roman.반소설 反小說·누보 로망)의 중심에 있었던 작가였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불멸의 여인』을 감독한다. 초기 작품은 사물을 사실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사물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표시하였으나 『질투 la jalousie』(1957) 『미궁(迷宮) 속에서 dans le labyrinthe』(1959) 등에서는 사물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그려냄과 동시에 주관성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깊어지게 된다.

한편 영화에 대하여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 그는 알랭 레네의 영화 『작년, 마리엔바트에서』(1961)의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도 하게 된다. 『불멸의 여인 l’immortelle』(1963) 외 몇 편의 영화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영화 『불멸의 여인』의 시나리오, 평론집 『새로운 소설을 위하여 pour un nouveau roman』(1963), 소설 『뉴욕 혁명계획 projet pour une re?olution  new york』(1970) 등이 있다.
 

앙티로망(anti-roman 반소설 反小說)
“앙티로망은 소설의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는 있으나, 사실은 소설 자체에 의하여 소설에 다른 이론(理論)과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소설을 파괴하는 소설이다.”
반소설(反小說)ㆍ비소설(非小說)이라하며 고전적인 창작기법과 관계없이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존재의 내용이나 본질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한 소설을 말한다.

독자는 구체적 현실에 따르지 않는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견해나 감각 기관의 자극 없이 의식 속에 떠오르는 느낌에 치우치는 선입관을 떠나 극(劇)을 보는 것과 같은 감동에 빠지게 된다. 원래 반소설(反小說)ㆍ비소설(非小說)이라는 말은 사르트르가 나탈리 사로트의 소설인 『낯선 사람의 초상(肖像)』 서문에 사용한 말로 1950년대부터 고개를 들고 일어난 프랑스의 실험소설 등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소설의 일반적인 지식과 형식을 파괴하고 성격, 줄거리, 객관묘사, 심리분석 등을 무시하고 순수한 상태에서 소설형태를 찾으려는 운동으로 등장인물이 1인칭이 2인칭으로 불리거나 무명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또한 줄거리의 모호함, 심리묘사의 부정, 작중인물의 해체 등을 특색으로 한다. 로브그리예ㆍ뷔토르ㆍ베케트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누보로망(nouveau roman 신소설)’이라고도 부른다. 누보누보로망은 누보로망 다음에 나타는 프랑스 소설의 새로운 경향을 말한다.

한편  연극인의 사회에서도 베케트나 이오네스코 등에 의해  반소설(反小說)ㆍ비소설(非小說)과 같은 경향의 ‘앙티 테아트르(반연극)’가 등장 하여 새롭고 대담한 기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사르트르가 나탈리 사로트의 『낯선 사람의 초상(肖像)』 서문에서 명명한 것이 시초이지만, 누보 로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로브그리예ㆍ미셸ㆍ사로트ㆍ마르그리트 뮐러 등이 이러한 전위적(前衛的 avant-garde)인 방법으로 창작하고 있으나, 특별한 주의나 주장을 내세우는 운동은 아니다.

서로 공통점이 있다면 창작하는 방식이나 형식을 근본적으로 반성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종류에 따라 구별하여 가르고 진위(眞僞)·선악·미추(美醜) 등을 새롭게 생각하여 정하고 아는 일에 적합한 독자적인 방식이나 형식을 창조하려고 의도하는 데 있다.
앙티로망의 문학관은 소설을 ‘쓴다’는 것은 현실을 고치고 바꾸는 일로 보기 때문에 사회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질투 la jalousie』
하일지(소설가)는 『질투 la jalousie』에 대해 극적 긴장감이 있고 놀랄만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서사가 숨어 있다고 했다.

작가의 시선은 천천히 이것에서 저것으로 옮겨가지 않고 그렇다고 요란하지도 않게 고집스런 모습으로 사물의 표면에 고정시킨다. 시선이 닿는 곳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견고함에 모아진다. 시선은 그 견고함을 뚫고 나와 나타나는 것은 의심과 불안이었다. 일정한 스토리는 사라져 없고 카메라로 한번 훑고 지나갈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묘사를 세세하고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태도와 방법으로 진행시키고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내심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질투 la jalousie』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면 아무도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적 쾌감이 없는 쓰기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지금 집은 비어 있다. a는 무언가 급히 쇼핑할 일이 있어, 프랑크와 함께 시내로 내려갔다. 어떤 물건을 사려는 것인지 그녀는 밝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출발했다. 두 사람이 물건을 사는데 필요한 시간은 대충 그날 밤 안으로 재배장에 돌아올 예정이다. 그들은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서서 자정이 넘어 귀가할 계획이다. 테라스도 역시 비어 있다. 오늘 아침에는 휴식용 팔걸이의자가 하나도 놓여 있지 않다. 이 방의 가구는 매우 간소하다. 칸막이벽에 붙어 있는 서류 정리 박스와 책장, 의자 두 개, 서랍이 달린 커다란 사무용 책상, 그 책상의 한쪽 구석에 자개로 장식된 작은 액자가 놓여 있고, 그 속에는 유럽 해안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들어있다. 그녀가 커다란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사진이다. 의자는 그녀가 유리잔을 놓으려고 하는 테이블과 비스듬한 위치에 놓여 있다. 테이블은 무수한 구멍이 뚫린 금속 원판인데 그 구멍 중 가장 큰 것은 마치 복잡한 꽃 장식을 한 것 같다. 두 번 구부려 놓은 차바퀴처럼 s자 형으로 된 많은 선이 모두 중심에서 나와 각각 나선형을 그리면서 원판 주위의 다른 쪽 끝에 감겨 있다. 사진의 오른쪽 끝 가까이 테이블 위의 두 번째 유리잔 옆에 남자의 한 쪽 손이 찍혀 있는데, 상의의 소맷부리만 보이고 그 끝은 하얀 수직선에 의해 끊어져 있다.

a는 비스듬히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으려고 하는 유리잔은 보지 않고, 마치 이 즉흥적인 사진 촬영을 격려하듯 사진사에게 몸을 돌린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사는 모델과 같은 높이까지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는 그 어떤 물체 위에, 예를 들면 돌 벤치, 계단, 혹은 낮은 벽 위에 올라선 것 같이 보인다. a는 렌즈에 맞추기 위해 얼굴을 들었음이 분명하다. 아름다운 목이 오른쪽으로 돌려져 있다. 오른손은 넓적다리 근처에서 의자의 끝에 자연스럽게 기대어 있다. 맨살이 드러난 팔꿈치를 가볍게 굽히고 무릎을 벌리고 두 다리는 반쯤 뻗은 자세로 복사뼈 부분에서 맞 포개져 있다.

온 집안이 비었다. 아침부터 텅 비어 있다. 지금은 여섯 시 반이다. 태양은 고원의 제일 끝에 솟은 바위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밤은 어둠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것 같고, 조금도 서늘하지 않으며, 오래 전부터 울어대는 시끄러운 귀뚜라미 소리로 가득 찼다. 불빛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파동처럼 연속적인 운동을 하는데, 서까래 모양의 연속적인 파동을 뒤흔든다. 이러한 바닥이 중단되지 않고 객실 겸 식당 안까지 계속된다. 식탁과 의자가 있는 부분에는 섬유로 만든 덮개가 덮여 있다. 식탁과 의자다리의 그림자는 시계바늘과는 반대방향으로 급히 회전한다. 식탁 뒤의 긴 그릇장 중앙에 있는 특산 항아리는 부피가 매우 커 보인다. 유약을 칠하지 않고 구운 적토의 사다리꼴의 정점의 하나에 결부되고 있다.
 
부엌문은 닫혀 있다. 그 문과 복도의 활짝 열린 입구 사이에 지네가 있다. 커다란 지네로서, 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놈 중의 하나이다. 몸은 아래쪽으로 향해 있다. 앞부분은 기둥 쪽으로 휘어 있으나 뒷부분은 몸마디는 최초의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즉, 복도 문턱에서 부엌의 닫힌 문 위의 천장 구석에 이르는 널빤지를 비스듬히 지나가는 직선 방향이다. 지네는 위험을 눈치 챈 모양이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촉각만이 완만하고 연속적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고 반복한다. 프랑크는 묵묵히 일어나서 타월을 집어 든다. 그것을 둘둘 말아서 살금살금 다가가 지네를 벽에다 눌러 죽인다. 그리고 침실 바닥에 그것을 발끝으로 비벼 버린다. 다음에 그는 침대 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오다가 경대 옆 금속 옷걸이에 타월을 건다.

세월 때문에 청백색으로 바랜, 얼마 남지 않은 회색 페인트와 습기 때문에 잿빛이 된 나무 부분 사이에 군데군데 불그스름한 갈색의 작은 표면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원래의 나무 빛깔이었는데, 최근에 페인트가 벗겨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침실 안에서 a는 창문에 기대어 블라인드 틈새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흙으로 덮인 통나무 다리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흙탕물 위로 몸을 굽히고 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숙이고 웅크리고 앉아 팔을 다리에 대고 있다. 그의 앞 시냇물 저쪽에 있는 소농지에는 수많은 바나나송이가 익어서 수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곧 몸을 감추더니 몇 초 후 좀 더 떨어진 곳에 나타난다. 그 위치에서는 바나나나무 숲과 고원의 언저리 그리고 그 사이에 소수의 나무가 점재하며 잡초가 우거진 미개간 지대밖에 보이지 않는다.
▲ 조순옥     ©독서신문

a는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녀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창 안으로 시선을 보내야 한다. a의 보드라운 손가락은 커다란 못의 둥근 윗부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가지 못한다고 프랑크가 말하자 a는 유감이라고 한다. 원주민의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운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프랑크는 늘 그렇다고 부연한다. a는 시내로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한다.
여섯 시 반이다. 어두운 밤 귀뚜라미의 소리가 마당과 테라스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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