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9회)
소설 춘천옥 (9회)
  • 김용만
  • 승인 2008.01.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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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식업을 종합예술이라고 봅니다. 우선 미적감각이 예민해얍니다. 화분은 어디에 놔야 하고 휴지통은 어디에 숨겨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 적응력이 필요합니다. 심리분석도 필요하고요. 상대하는 사람이 여러 계층에 다양하잖습니까? 그들 모두와 친화하려면 사람 볼 줄 알아야죠. 그렇다고 너무 약아서도 안 됩니다. 약삭빠른 것보다는 좀 미련한 게 낫죠. 후덕해얍니다. 하지만 허허해선 안 됩니다. 주도면밀해얍니다. 한눈에 구석구석을 살필 줄 알아야 실수를 예방합니다. 군대에서도 노련한 지휘관은 샅샅이 살피지 않고도 한눈에 파악하죠. 순발력이 있어얍니다. 대처능력,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 실수를 신속히 전화위복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어야죠.”

  “히야!”
  “복잡하죠?”   
  “그런데 사장님은 왜 힘든 요식업을 택했어요?”
  바라던 질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마침 잘됐다 싶어 말을 재밌게 엮어나갔다.
  “내가 요식업을 시작한 동기는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실 때 태몽이 참 묘했다고 해요. 맑은 하늘에 냅다 번개가 치더니 산과 들에 쌀이 쏟아졌대요. 쌀은 순식간에 밥이 되고, 세상천지는 온통 하얀 쌀밥으로 뒤덮였답니다. 그러니 밥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만약 밥장사를 기피한다면 벼락맞아 죽을 팔자였죠.”

  내 태몽은 항상 입에 담아온 이야기였다. 식당  직원이나 손님한테는 물론, 친척, 친구, 심지어 식구들에게까지 서슴없이 늘어놓았던 이야기. 그런데 유독 아내만이 내 말을 물고늘어졌다.
  “어머니한테서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당신 멋대로 꾸며낸 말이겠죠.”
  “태몽을 엄마가 함부로 누설하셨겠어?”
  “누설? 이 양반 되게 웃기네. 꿈 얘긴데 뭐가 대단한 거라고 어머니가 자식한테까지 숨겨요? 그리고, 태몽 얘길 숨기는 엄마 봤어요?”

▲ 그림 송대현     © 독서신문
  옳은 말이다. 세상 어머니들은 자기의 태몽이 특별할수록 더 떠들고 싶어 안달한다. 우리 어머니는 자랑할 태몽이 있으면 머리에 이고 다니며 떠들어댈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한테서 태몽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내 출생은 시시했던 것이다. 애시부터 나는 존재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이웃집 개도 짖지 않을 존재, 그게 나였다.
  “당신 신분 추락을 변명하려고 그런 얘길 꾸몄겠죠. 밥장수 된 게 창피해서 변명거리를 만든 거라구요. 손바닥만한 식당을 차린 게 창피했던 거죠. 안 그래요? 노름으로 공장을 날리고 앞치마를 둘렀소, 그렇게 솔직할 수는 없었겠죠? 태몽이 이러하니 난 밥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소, 그렇게 둘러대고 싶었겠죠? 맞죠? 그래서 탄생설화를 만들었죠?”

  “탄생설화가 아니고 개업설화야.”
  “개업설화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거에요. 남들은 생활수단이나 돈 벌기 위해서 식당을 차렸지만 난 다르오, 식당을 차린 게 아니고 식당이라고 하는 예술품을 만들 참이오, 난 원래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었소.”
  “역시 대단한 마누라군. 이렇게 똑똑하니까 남편이 살림을 거덜내도록 놔뒀겠지.”
  “뭐라구요? 노름하지 말라고 울고불고한 게 누군데?”
  “물론 당신이지. 하지만 내가 뭐랬어. 돈을 몽땅 챙겨서 애들과 도망치랬잖아? 끝장을 보는 게 노름꾼 생린데, 울고불고한다고 화투판에 안 끼겠어?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쳤으면 재산을 반은 건질 수 있었잖아.”
  “당신은 원래 거지 팔잔데 잘됐던 거죠 머.”
  “내가 거지 팔자라구?”
  “만날 죽음, 허무, 어쩌고 하며 돈하고는 담쌓고 살았잖아요.”
  “그런 체질이 사업하면 똑소리나게 한다구.”
  “암튼 내 생각엔 개업설화가 좋겠는데, 그 방향으로 줄기차게 밀어봐요. 태몽꿈을 만들었으니 그걸 개업설화에 이용해보라구요. 신라의 개국설화도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기에 더 신비로운 거죠. 박혁거세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면 싱겁잖아요?”
  “맞아. 그거였어.”

  내가 태몽을 꾸며낸 이유는, 아내 말대로 밥장사를 폄하하던 시절에 포장마차 주인으로 추락한 내 체면을 변명하려는 의도였다. 장래가 촉망되던 사람이 화투에 미쳐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었고, 사십 넘은 나이에 초라한 업소에서 앞치마를 둘렀으니, 무슨 수로든 그 꼴을 변명해야 했는데 그 변명이 운명론이었다.
  나는 요즘 내 팔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곤 한다. 일류학교를 나왔으면서도, 또 일류학교를 다니기 위해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였으면서도, 그런 계획적인 생은 어디로 달아나고 조심성 없이 기분 나는 대로 살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왜 도박에 휘말렸던가. 차근차근 쌓아 올린 탑을 한순간에 부숴버리는 그 어이없는 파괴심리는 무엇인지.... 허무, 그렇다. 그 허무가 나를 감성적인 체질에 가둬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밥장사는 운명이다, 그 말씀이군요.”
  스탭진 ad가 말했다. 나는 그에게 좀 색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단순히 밥장사에 불과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요, 나는 내 운명에 반역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나 자신이 두려워요. 그 두려움은 고질병처럼 내 육신을 괴롭히고 있죠. 온 정성을 기울여 쌓고 있는 춘천옥도 언제 부숴버릴지 몰라요. 나는 누구에게도 지고 살긴 싫지만 나 스스로 나를 무너뜨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내 부조리죠.”

  그렇다. 내 그 부조리는 황당한 욕망에서 비롯된다. 현실정신이 알뜰하게 탑을 쌓다가도 한순간에 여지없이 그걸 무너뜨리는데, 하지만 그 파괴의식이 나를 순결하게, 아름답게, 고결하게 치장한다. 이 엄청난 모순. 아아, 나를 죽이면서 동시에 나를 살리는 허무. 결코 그 허무에서 헤어날 수 없는 걸까? 남과 같이 평범하게, 오순도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없단 말인가? 나는 왜 이런 인간으로 구조되었을까? 40대 중반 나이가 되도록 초가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기틀을 잡았는데, 양옥집도 장만하고, 경치 좋은 수도권에 땅도 수천 평 사놓고, 고급 승용차도 굴릴 수 있는데, 게다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춘천옥 체인점을 내달라고 조르는 판인데, 이게 무슨 방정맞은 갈등인가. 소설을 쓰겠다니. 그래, 이제부터 소설을 써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난다. 노름판에 낄 때마다 느껴지던 두려움이다. 화투를 만지면 신세 망칠 줄 알면서도 노름판에 끼고 마는 그 반의적 행위처럼, 소설에 빠지려면 날로 번창하는 춘천옥을 등질 수밖에 없는데 그 두려운 모험이 가슴을 옥죄곤 한다.
  나는 왜 이런 체질일까? 나는 왜 이처럼 미련할까? 왜 배금주의자가 되지 못하는 걸까? 사업도 내 인생의 본령이 될 수 있잖은가? 문학 인생만이 본령은 아니잖은가?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어 명성을 날리면 그만 아닌가?  소설창작이 과연 내 허무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춘천옥 새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춘천옥 부지는 3년 전에 구입했었다. 개업한 곳에서 장사를 계속할 작정이었지만 건물주가 경우 없이 세를 올리는 데다 자기 집안사람을 시켜 춘천옥 근처에 보쌈.막국수 전문집을 차리는 바람에 위기감이 느껴져 부지 매입을 서둘렀던 것이다. 언제 춘천옥 자리를 비어달라고 재촉할지 모를 일이었다. 세를 얻어 장사하는 사람들의 함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고생고생해서 업소를 키웠는데 기한이 됐다며 나가라고 하면 속수무책이었다.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1년 동안 공사 끝에 건물이 완공되었다. 1,2층을 식당으로 구조를 변경하고 3층은 보쌈김치 만드는 방과 종업원 숙소로 정했다. 1,2층 홀은 모두 온돌방으로 꾸미고 2층은 크고 작은 방 5개를 만들어 단체손님을 받기로 했다. 특히 화장실에 신경을 썼는데 관청에서도 88올림픽을 앞두고 화장실 개조에 관심을 쏟는 중이었다.
  이제 업소 이전이 문제였다. 기존 업소는 남은 계약기간인 7개월 동안 그냥 비워둔 채, 종업원 하나를 그 빈집에 대기시켜 찾아오는 손님을 건너편 새 업소로 안내하도록 했다. 춘천옥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손님이 없어야 했고, 주인이 춘천옥 자리를 그대로 활용하면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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