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살인’ 사형제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의 살인’ 사형제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9.0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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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중학생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유기해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36)에게 지난 6일 2심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의 파렴치한 행각에 사회적 공분과 함께 ‘응당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지만 2심 재판부는 “(범죄 혐의가) 사형에 처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다”며 국민의 법 감정과 거리를 두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심 재판에서 이씨 측은 “사형은 공권력의 복수”라고 항변했지만 이번 항소심에서는 “살인자로서, 사형수로서 한평생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2심 재판부는 “(이씨를)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는 있지만 교화 가능성을 부정하고 사형에 처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만일 이씨에 대한 처벌이 무기징역으로 확정된다면 20년 형기를 채운 후에는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이씨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다만 이씨가 사형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실제로 집행될 가능성은 낮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중단한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무기징역과 사형의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무기징역은 20년 형기를 채운 모범수에 한해 가석방의 기회를 허용하지만 사형수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차이점을 지닌다. 

현재 사형제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거나 집행이 무기한 유보되는 분위기다. 지난 4월 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형 집행 국가는 1998년 37개국에서 지난해 23개국으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사형제 폐지를 법으로 정한 나라는 70개국에서 106개국으로 늘어났다. EU(유럽연합)은 ‘사형제 폐지’를 가입요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교황청은 지난 2일 “전 세계의 사형제 폐지를 위해 결연히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수정하기도 했다.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 미국, 일본 3개국뿐이다. 일본은 지난해 4건의 사형을 집행했으며 지난달 6일에는 국제사면위원회의 만류에도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1995년 3월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13명을 죽이고 6,200명에게 부상 입힘)에 대한 사형집행(교수형)을 강행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38개주(총 50개 주)와 연방정부가 사형제도(약물주사·가스·전기의자·총살·교수형)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은 지난해 23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으며, OECD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은(약물주사·가스·전기의자·총살형) 지난해 공권력으로 1,000여명의 목숨을 거두면서 집계가 불가능한 북한·베트남을 제외하고 최다 수치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부터 사형 집행이 중단된 상태다. 1980년 군부정권에 의해 조작된 내란음모 혐의로 인해 사형을 언도받았다가 구사일생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형제도 존치를 주장했으나 실제로 집행하지는 않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국민인권위원회는 올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오는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사형제 집행 중단을 공식 선언하는 안건을 놓고 청와대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의 인식은 사형제 존치가 우세한 상황이다. 지난달 21~23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1명에게 물은 결과 69%(690명)가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고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2%(220명)에 불과했다. 찬성 측이 밝힌 이유로는 ‘강력한 처벌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함’이 많았고, 반대 측 의견으로는 ‘인권·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다수를 차지했다. 

아직까지는 강력범죄에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고 사적인 복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적 처벌(사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 의견도 상당한 수준이다. 형벌이란 죗값을 묻고 참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인데 사형은 생명권을 박탈하면서 반성의 기회를 앗아간다며 반박한다. 또 사형 제도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오용될 위험이 있으며 잘못된 판결로 인한 사형은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점도 대표적인 사형제 폐지 반대 이유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1975년 발생한 인민혁명당사건이 거론된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내란음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23명이 체포됐고 그 중 8명이 사형을 당했다. 이후 해당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2007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죽은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사형제의 폐단은 문학작품에서도 드러난다. 2005년 공지영 작가는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 ‘윤수’와 대학 교수 ‘유정’이 상처를 안은 서로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지만 사형집행으로 이별하는 내용을 그리면서 사형 제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우연히 다가온 사랑이 윤수를 교화할 수 있었지만 사형이란 ‘제도권 살인’으로 그 기회가 박탈당한 상황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해당 작품은 사형 제도의 한계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되돌릴 수 없는 결함을 지닌 사형이란 형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사회가 점점 더 삭막해짐에 따라 경악할만한 강력범죄가 늘어나면서 ‘권선징악’을 주장하며 ‘사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오죽했으면 인도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는 사형제를 폐지했다가 다시 부활시켰고 터키와 필리핀 등은 사형제 부활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형 제도는 사회악적인 존재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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