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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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8.09.0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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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
도서관장>

[독서신문] 십수 년 소식 없이 지내던 친구이다. 그녀가 작년 어느 봄날 카톡으로 보내온 한 통의 문자에 반가움이 앞섰다. 자세히 보니 아들 혼사를 치른다는 내용이다. 예식 날짜가 하필 집안일과 겹쳐 부득이 부조금만 보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작년 가을 무렵, 그동안 연락 없던 친구가 이번에는 또 여혼(女婚)이 있다며 청첩장을 보내 왔다. 그 청첩장을 받고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경사가 있을 때만 소식을 전하는 친구의 처세에 왠지 입맛이 썼기 때문이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소식을 전하는 친구의 얍삽함에 왠지 모를 서운함이 묻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원만한 인간관계란 이해타산을 배제할 때 가능하다. 자신의 잇속 따라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어려울 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위로를 해주고 진심 어린 배려를 하는 게 좋은 인연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런 따뜻한 인간미가 결여된 처세로 주위로부터 빈축을 사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십수 년 전 친구는 자신의 다단계 판매에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걸핏하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때 나 또한 그녀의 청을 거절하자 그동안 단호히 소식을 끊고 지내던 친구이다. 친구는 순수한 정을 나눌 때 참된 우정이라 할 수 있다. 친구를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 일에만 혈안이 된다면 누가 곁을 지키겠는가. 

이 친구와 달리 우리 조상들은 이웃의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남의 기쁨이나 슬픔을 마치 자기 일인 양 여기는 선량한 마음은 우리의 미풍양속으로써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때 나누는 게 부조금이다. 지난 봄철엔 한 주에도 몇 건의 경조사에 부조금을 들고 쫓아다니기 바빴다. 어느 경우엔 결혼식이 하루에 두, 세 건 겹쳐 깜빡 잊고 부조금을 잊고 여태 못 보낸 곳도 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몇 달 지난 요즘 경조비를 새삼 내려고 하니 왠지 머쓱하고, 그냥 있자니 인간관계가 와해 될 터이고 난감하다. 언제부터인가 경조사 때 지출되는 부조금이 삶에 큰 부담은 물론 스트레스로 자리하기도 한다. 부조금은 흡사 저울의 눈금과도 같다. 상대방에게 받은 만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살다 보면 체면 때문에 마음에 없는 부의금을 낼 때도 있다. 별다른 친분도 없으면서 사회적 관계 때문에 부득이 예의를 차리기도 한다. 그러나 신경 써야 할 게 있다. 부조금 액수가 그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금액에 따라서 친분의 여부 및 예의의 척도를 가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조금도 엄연히 따지자면 빚 아니던가. 

상대방에게 받은 만큼 갚아야 인간관계도 유지되기에 어찌 보면 이 눈금을 제대로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봄, 가을 한두 군데도 아닌 많은 경조사를 대하게 되면 어느 경우엔 한 달에 적지 않은 금액이 지출되어 가계부가 구멍이 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구나 빠듯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경우, 이럴 땐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어야 할 지경까지 이르니 청첩장이나 초상, 아이 돌잔치 등의 소식이 들려오면 반갑기는커녕 마치 빚 독촉장을 받는 기분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어린 날을 뒤돌아보면 그때는 참으로 순박한 심성을 지녔다. 시골 동네에 경조사가 있으면 꼭 돈 봉투만이 부조금의 전부가 아니었다. 초상을 치룰 경우 애도를 표하기 위하여 상갓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곤 한다. 큰 가마솥에 밥과 국을 끓이고 돼지고기를 삶고 떡을 하곤 하였다. 술도 필요했다. 이때 돼지고기 몇 근, 술 몇 두(斗), 떡과 과일 등을 자신의 형편에 맞게 부조를 하는 것만으로도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할 수 있었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따듯한 위로는 희망과 긍정의 힘을 안겨준다. 또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이웃은 얼마나 미더운가. 이렇듯 희로애락을 겪을 때 마음으로 이웃과 정을 나누던 우리 민족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경조사 때 부조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대방 마음도 저울질하는 세태이다. 이는 물신주의에 젖은 탓일 것이다. 아무리 마음으로 축복의 마음을 보내고 가슴으로 내 일처럼 슬퍼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이에 버금가는 부조금만이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마음의 잣대일 뿐이다. 그러나 부조금보다 더 오차에 주의 할게 있다. 타인의 슬픔이나 기쁨을 자신의 일인 양 공감하는 진정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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