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묵의 3분 지식] 한국과 중국의 치킨 게임… "누가 이길까?"
[조환묵의 3분 지식] 한국과 중국의 치킨 게임… "누가 이길까?"
  • 조환묵 작가
  • 승인 2018.08.2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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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치킨 게임

[독서신문]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란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극단적 게임이론이다. 원래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이었다. 이 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을 피해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치킨 게임은 1950~19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극심한 군비 경쟁을 꼬집는 말로 차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널리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정치학뿐 아니라 국가 간 산업 대결, 기업 간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킬 때 자주 인용된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과거 D램 메모리 반도체의 무한생산 경쟁이 벌어졌던 세기의 대결이 대표사례다. 2008년부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일본 엘피다,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온, 대만 이노테라 등이 치킨 게임을 벌였다.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으로 삼성전자의 2008년 3분기 영업이익률은 0%가 됐으며, 하이닉스는 -28%, 마이크론은 -35%, 이노테라는 -39%를 각각 기록했다. 당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선두업체였던 한국의 두 회사와 나머지 전 세계 반도체 회사 간에 벌어진 치킨 게임의 승리는 결국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게 돌아갔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때 일본, 대만, 독일, 미국의 많은 경쟁사는 파산하거나 합병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2012년 일본의 엘피다는 미국의 마이크론에 합병되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가 독주하고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추격하는 1강 2중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현재 사상 유례없는 슈퍼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한국의 두 회사가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킨 게임에서 상대가 강자일 때 약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약자끼리 합종연횡을 하여 살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손자병법서 ‘삼십육계’에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최후의 계책 ‘주위상(走爲上)’을 쓰면 된다. 이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말이다.

1969년에 설립한 미국 반도체 회사 인텔(Intel)은 1980년대 일본 경쟁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메모리 시장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비메모리 시장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인텔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은 삼십육계의 마지막 36번째 계책, 속칭 줄행랑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반면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은 한국 회사들과의 치킨 게임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한편 LCD 산업에서는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중국 기업이 LCD 시장에 대거 뛰어들자, 한국 기업은 새로운 LED 기술을 개발하여 현재 전 세계 LED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도 '주위상'의 모범 사례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최근 ‘반도체 굴기’를 꿈꾸며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지난 6일 중국 칭화유니그룹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독자 3D 낸드플래시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업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당장 YMTC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력 업체들을 따라잡을 만한 제품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그 성장세가 무서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조만간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반도체 치킨 게임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직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기술 수준이 몇 년가량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과거 LCD 시장에서 중국 기업이 막대한 물량 생산으로 승리했듯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똑같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향후 한·중 간 반도체 치킨 게임의 승자가 누가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이기기 위해서는 후발 기업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기술 격차를 더 벌리는 초(超)격차 전략을 유지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핵심 기술이자 한국 경제를 짊어지고 있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승리를 기원할 뿐이다.

(출처: 『직장인 3분 지식』)

■ 작가 소개

조환묵

(주)투비파트너즈 HR컨설턴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IT 벤처기업 창업, 외식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만 몰랐던 식당 성공의 비밀』과 『직장인 3분 지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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