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내향적인 엄마에게 육아서란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내향적인 엄마에게 육아서란
  • 스미레
  • 승인 2018.08.14 09:0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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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가 많습니다. 꽤 비웠건만 아직도 책장에는 수 십권의 육아서가 꽂혀 있습니다. 좋은 책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나'라는 엄마는 없었지요.

인터넷은 또 어떤가요. 손쉬운 정보를 원하다 손쉽게 길을 잃고는 번번이 거리에서 엄마 찾는 아이의 심정이 되곤 했어요.

기준이 높았습니다. 책과 인터넷에서 내가 만났던 분들은 대개 교육 전문가, 심리학자, 의사, 아이를 똑부러지게 잘 키웠다는 부모님 등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종일 나를 따라왔습니다. 블로그의 엄마들은 지치지도 않고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었고요. 평범한 내가 가련해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서툴러서, 잘 몰라서, 육아서가 업무지침서였고 블로그 속 활동이 숙제였습니다. 피곤했어요. 그로 인해 본 덕도 있습니다만, 임계점을 지나는 순간 죄책감과 불안이 몰려왔어요. 내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늘 촉각이 곤두섰어요. 걸음마다 묻어나는 짜증과 무기력. 말 그대로 번아웃(burn-out) 된 것입니다.

육아서를 읽고 자극받고 고양되는 기분 역시 알아요.

하지만 몇 해전의 나처럼 육아서에 지쳤다면 잠시 멈춰보길 권합니다. 너무 많은 것이 쌓여서 질척댄다면 홀홀 비워내고 고슬고슬 햇볕을 쬐어주세요.

대부분의 슈퍼맘과 나는 기질부터 달랐어요. 내향적이고 정적인 나는 열정을 앞세워 자신을 충동하면 탈이 났어요. 마음 쓰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뺏겼어요. 비교와 쓴소리에 바로 움츠러들었어요. 그런줄도 모르고 잡히는대로 육아서를 읽고 우격다짐 잘 하려고만 했습니다. 무작정 나를 소진시켰고 방전되면 화가 났지요.

육아는 소위 '템빨'이라던가요. 내 경우 육아는 '기분빨'입니다. 나에게 고인 감정은 냇물처럼 아이에게로 흘러들어요. 오늘 내가 흘려보낸 냇물의 색깔이 내일 아이의 강물 색깔이 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내가 편안하면 아이 또한 편안하고 말갛게 빛이 났어요.

그래서 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육아서가 아닌 가벼운 책을 들고, 핸드폰 속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를 바라보았어요. 잘 먹고 푹 잤어요. 잠깐이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기쁘게 동참했습니다. 

그것이 자동차든 선풍기든 뽀로로든 무엇이든, 짧고 굵게요. 무얼하든 아이와 내가 활기차고 편안할 때 하는 것이 나았습니다. '책에서 이렇게 하랬으니까, 다른 엄마들 다 하니까' 스트레스 받으며 하는 활동은 늘 미지근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림을 하고 편안한 책을 읽습니다.

제 몫의 충전법입니다. 아이를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힘든 것이 육아이기에 에너지 균형에 신경을 씁니다.

특히 육아서나 블로그를 본 날, 과한 의욕과 감정이 앞서지 않게 주의합니다. 외려 마음이 가볍고 놀놀할 때 무언가를 더 합니다. 책을 읽어주거나 실험을 하고 속 이야기도 꺼내봅니다. 맛사지를 해주거나 공놀이도 해요. 그러니까, 이것은 엑스트라 활동인 셈이지요.

저에겐 이렇게 짧고 굵게 치고 빠지는 방식이 맞았음을 오랜 후에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조차 몰랐어요.

NBTI 유형 중 INFP. 지극히 내향적이고 골똘한 타입입니다.

반면 육아계의 내로라하는 저자/블로거 분들은 에너지 넘치는 활동가 타입인 경우가 많아 보여요. 그 분들의 육아법을 무조건 따라하는건 무리였습니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당신, 쫓기지 말아요.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조용하고 감성적인 당신에게 소란한 감정노동인 육아는 힘이 들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열정이 큰 것도 알아요. 하지만 천천히 가요.

많은 말에 휩쓸리지 않게, 많은 생각에 지치지 않게 조심해요. 누군가를 따라하느라, 자책하느라 소진되지 말아요. 에너지 레벨이 낮고 방전이 쉬운 우리는 에너지를 모으는데 주력해야 해요.

숱한 육아서를 읽고 얻은 결론은 결국, '육아는 개인적 경험'이라는 겁니다. 누구도 나와 아이를 위해 딱 맞는 밥상을 차려줄 수는 없어요.

오롯이 내 몸으로 부딪치며 조절하고 감내해야 합니다. 내 손으로 쌀을 씻어 물 맞추고 뜸 들여 밥을 지어야 해요. 그게 모래가 반이든 겨가 반이든, 남의 밥상 바라보며 숟가락만 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배운 적 없는 일을 해내는 것. 중요한 것은 엄마의 '건강함'과 '편안함' 아닐까요?

핸드폰을 내려놓고 육아서를 덮습니다.

아이와 눈 맞추고 볼을 부빕니다. 이내 터져나오는 꽃망울같은 웃음. 아이가 원하는건 책 속의 대단한 엄마가 아닌 '우리 엄마'일 것입니다. 교육학을 정통하고 최신 육아법으로 무장한 다른 엄마 아닌, 다정한 시선과 따스한 품을 가진 우리 엄마. 어린날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고 추운날 손 잡아주던 엄마의 기억이 나를 키웠듯 말이예요.

타이핑을 멈추고 아이가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뭘 좋아했는지 생각합니다. 오전에 커피를 내리며 즐거웠던 기분, 더운날 선풍기 틀고 집밥을 지어 먹은 나의 장함도 더듬어 봅니다. '해주지 못 한 것'이 아닌 '한 것'에 초점을 맞추면 하루가 말끔합니다.

"길 위의 나뭇가지도 어떤 이에게는 지팡이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밤 터는 장대가 된다" 육아서 대신 펼친 책에서 골라온 말입니다. 덕분에 세상의 잣대로 아이를 재지 않겠노라 다짐합니다. 역시 그래요. 내게는 일보의 간격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육아가 행복하고, 나아가 집안이 편안함을 이젠 알아요. 모화만사성(母和萬事成)이 곧 가화만사성입니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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