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로 무수한 칼자국’으로 남은 김애란의 어머니 『칼자국』
[리뷰] ‘실로 무수한 칼자국’으로 남은 김애란의 어머니 『칼자국』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8.13 11: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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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어린 시절 저는 제 어머니가 오랫동안 꾸린 국수 가게에서 먹고, 자고, 자랐습니다. 그땐 왜 제 주위의 많은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지 못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곳을 이렇게 소설로나마 남겨 놓아 이따금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이라는 통로를 만나, 나 말고 이제 다른 사람도 그 안에 초대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놀랍습니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두근두근 내 인생』 등으로 이른 나이에 천재 소설가라는 평을 들어온 김애란 작가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단편 「칼자국」이 출간됐다. 어린 시절을 어머니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듯, 작가의 과거 역시 어머니가 중심이다.

‘칼자국’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소설에서 어머니는 식칼과 깊게 연결된다. 작가는 ‘해가 지면 밥 짓는 냄새가 풍기며, 도마질 소리는 맥박처럼 집 안을 메웠다. 그것은 새벽녘 어렴풋이 들리는 쌀 씻는 기척처럼 당연하고 아득한 소리였다’라고 묘사했다. 작가에게 식칼은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며 곧, 어머니 그 자체였다. 도마질 소리는 곧 어머니의 맥박 소리였고, 어머니가 살아서 곁에 있으며 주인공을 보호하고 있다는 암시였다.

어머니의 칼은 평생 가족을 거둬 먹여 살렸고, 때로는 가족을 보호했지만, 동시에 어머니를 다치게 하거나 어머니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게 구속했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20년간 식칼 한 개로 국수를 만들어 판다. 식당 앞에서 무서운 개가 주인공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어머니의 손에는 그 칼이 꼭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국수 반죽을 자르다가 어머니는 손가락 세 개를 한 번에 베이기도 했고, 늘 그 칼로 식당일을 했기 때문에 남들처럼 배려받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식칼이 늘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어머니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식칼은 긴 세월, 자루는 몇 번 바뀌었으나 칼날은 그대로였다. 날은 하도 갈려 반짝임을 잃었지만, 그것은 닳고 닳아 종내에는 내부로 딱딱해진 빛 같았다.’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고, 사채를 써서 집안이 망할 위기에 처해도 어머니만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묵묵하고 우아하게 주인공을 기다린다. 작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식당에서 홀로 식칼을 바라보며 ‘그것은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닳고 닳아 종이처럼 얇아졌지만, 여전히 신랄하고 우아한 빛을 품은 채였다’라고 적었다.

‘나는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작가의 이 말이 소설과 작가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칼자국』
김애란 지음·정수지 그림|창비 펴냄|84쪽|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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