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마우어.
약이 중얼거렸다. 두터운 안개를 뚫고 가는 중이었다.
노래를 불렀었지.
어떤?
내가 물었다.
기억 안 나?
약이 되물었다.
글쎄.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 외엔 할 말이 없었다. 내 제스처를 약은 보지 못할 거였는데도 그랬다. <7쪽>
햄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는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햄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동안은 멍한 상태로 이불을 둘둘 말고 있었다. 이불에서 습하고 끈끈한 냄새가 났다.
되고 싶지 않았는데 햄이 되었어요. 되고 말았어요.
그가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27쪽>
휴학하고 가장 처음으로 취직해 일했던 제빙공장에서였다.
햄이나 될까봐요.
케이가 말했다. 제 몸만 한 크기의 삽에 매달려 냉동고 안으로 한참 얼음을 채워 넣던 중이었다.
그냥.
그냥?
몇 달만요.
나는 삽질을 멈췄다.
어쩌려고?
케이는 검정색 방한 마스크를 한쪽 귀에만 걸고 기지개를 켜더니 씩 웃었다. 말할 때마다 드라이아이스 같은 흰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한 서너 달쯤 있다가 사촌 형이 와서 데려가 주기로 했어요. <47쪽>
괘, 괜찮아.아버지는 대꾸했다. 별다른 대화를 더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입을 다물고 아버지의 얼굴이며 몸 여기저기를 눈으로 쓸다가 번번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풀죽은 얼굴로 맞잡은 손의 손가락만 주물거렸다. 불안해 보이는 아버지의 눈망울이 애처로웠다. 오늘은 안개가 심해요, 라거나 오늘은 안개가 좀 덜해요, 하고 내가 말해도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정도였다. 그의 야윈 얼굴을 한참 바라만 보다가 딱딱한 손 한번 붙들어 보지 못하고 면회를 끝내야 했다.
또 올게요.
인사해도,
괘, 괜찮아.
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들을 그렇게 대하는 매뉴얼이라도 머릿속에 입력돼 있는 것처럼.
또 올 거예요.
나는 짐짓 서운하다는 투로 웃어 보였지만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고 내 얼굴을 바라만 보다가 휘청거리듯 뒤돌았다. <67쪽>
『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지음|문학동네 펴냄|328쪽|1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