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사태 겨눈 ‘징벌적 손해배상’, 엄포에 그치지 말아야
BMW사태 겨눈 ‘징벌적 손해배상’, 엄포에 그치지 말아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8.0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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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차량 화재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BMW의 경우 올해에만 32대의 차량이 화마에 휩싸였으며, 9일에는 국산차량인 에쿠스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불안감을 더했다. 특히 3일에 1대 꼴(7-8월에만 20건 이상)로 불타고 있는 BMW 차량 운전자들은 시한폭탄을 안은 듯한 불안과 함께 자신의 차량을 잠재적 발화물로 간주하는 주변의 경계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 고가 외제차로 부러움을 샀던 BMW 차량은 이젠 일부 주차장에서 주차를 금지할 만큼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사태가 커지자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뒤늦게 사과했지만, 화재의 원인을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불량으로 추정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EGR의 경우 한국과 동일한 부품을 사용하는 유럽 시장에 판매된 차량에서 2016년부터 비슷한 화재 사례가 있었고, 최근까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을 벌였지만, 리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BMW 차주는 김 회장과 BMW 독일 본사 임원을 상대로 ‘형사 고소’에 착수했다. 이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늑장 리콜 또는 고의로 결함 사실을 은폐·축소하는 제작사는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처벌을 받도록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제조사가 고의성을 띠고 불법을 자행할 경우 발생한 재산 피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조치이다.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상당한 액수의 배상액을 부과하기 때문에 기업의 적극적인 대처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성격을 띤 개인정보 보호법, 제조물 책임법 등은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만 배상할 수 있다고 규정한 상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배기가스량 조작 사건) 당시 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제조사가 결함을 은폐하거나 대처에 소극적일 경우 매출액의 3%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아직 국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9년 연방법원이 필립모리스 담배 회사에 7,950만달러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린 건이다. 40년간 하루 세 갑씩 흡연하다 숨진 제시 윌리엄스의 유족이 필립모리스가 흡연이 위험하지 않고 중독성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흡연자들을 오도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소도시 힝클리 주민이 중금속 배출로 수질을 오염시킨 전력회사 PG&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배상금 3억3,300만달러를 받아낸 사례도 유명하다. 해당 사건은 2000년에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맥도날드의 커피 온도를 낮추기도 했다. 1992년 미국에서 70대 여성이 커피를 다리에 쏟아 3도 화상을 입었다. 여성은 맥도날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앞서 커피 온도가 너무 높아 부상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맥도날드 측이 최적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85℃ 수준의 높은 온도를 유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법원은 손해배상금 16만달러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48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후 맥도날드는 커피 온도를 57℃ 수준으로 크게 낮췄다. 이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기업의 이윤 추구가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 역할을 했다.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의 문제점도 존재한다. 특히 고소·고발이 빈번한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남발되면서 이에 따른 피해도 상당하다. 2007년 로이 피어슨 워싱턴 D.C.행정법원 판사는 한국계 주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맡긴 바지가 분실됐다며 5,400만달러(약 600억원) 배상 소송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피어슨 판사를 판사 재임명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고 결국 판사직에서 해임됐지만, 소송 기간에 한인 세탁소 주인은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17년 미국에서는 수박을 꺼내려다 넘어져 골절상을 당한 고객에게 월마트가 750만달러(약 84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고소인 측 변호인은 “월마트는 고객의 발이 틈새에 빠지지 않도록 상품을 진열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월마트는 항소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반대론자들은 실제 손해 정도에 관계없이 배상금을 책정하면 소송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사행심’으로 인해 소송 남발과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기업이 자발적 손해배상에 대비하기 위해 사내 유보금 마련, 보험 가입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발생하는 가격 상승 등의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번 BMW 사태와 관련해 오는 20일부터 520d를 포함한 42개 차종 10만6,317대를 대상으로 리콜이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을 찾지 못한데다가 리콜 대상 이외의 차량에서도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번 리콜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김 장관이 BMW 본사를 겨냥해 “여러분의 나라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유사한 사고를 유발했을 때 어떤 조처를 내렸을지 상정하고 이와 동일한 수준의 조치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BMW 측의 책임감 있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만일 BMW가 소비자 권익보다 자사 이익을 우선한다면 김 장관이 언급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엄포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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