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책 읽는 대한민국] 『모든 저녁이 저물 때』
  • 곽준희 기자
  • 승인 2018.08.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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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나치 정권, 소비에트 시대, 독일 통일 이후를 아우르는 격동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한 여인이 선택할 수 있었던 다섯 가지의 삶과 다섯 번의 죽음을 추적한다. 예니 에르펜베크는 여자가 갓난아기로 죽었을 경우, 성인이 되어 낯선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경우, 히틀러 시대에 억울하게 스파이로 지목되어 처형당하는 경우, 중년에 발을 헛디뎌 난간에 떨어져 죽는 경우, 노년기에 치매를 앓다가 요양원에서 죽는 경우를 통해 죽음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각 권에서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막간극에서는 숙명적 우연을 거듭하며 생명을 이어나간다. 작가는 막간극에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만약 그때 그랬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묻는다.
소설 속에 녹아 있는 20세기 유럽의 현대사는 여자의 선택과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자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며 새로운 삶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운명은 역사, 사회, 정치, 문화와 맞물려 교묘하고 모호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민족주의에서 기인한 반유대주의, 히틀러와 나치즘, 제2차 세계대전, 사회주의 혁명 등은 유럽의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모두 인간에 의해 발생했고 인간이 만들어냈다. 인간이 주도한 흐름이 세계를 형성하고 이러한 세계는 또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에르펜베크는 끝을 알 수 없는 연쇄작용으로 사회와 개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녀는 인물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포착하고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묵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우리는 그녀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인물과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런 지점에서 독자들은 작가가 얇은 실을 겹겹이 엮어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배수아 옮김│한길사 펴냄 │320쪽│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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