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김수영 출판진흥원장 “책,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낼 것”
[책 읽는 대한민국] 김수영 출판진흥원장 “책,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낼 것”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8.01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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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태구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해 떠들썩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는 출판계도 연루돼 있었다. 출판문화를 진흥하는 기구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전 출판진흥원장이 출판계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개입한 의혹 등이 제기됨에 따라 사의를 표명한 후로 8개월간 공석이었던 자리가 지난달 11일 채워졌다. 신임 원장으로 김수영(54)씨가 임명됐다. 

3년의 임기 동안 대한민국의 출판산업을 지원하는 일을 총괄한다. 출판 경기가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이 때 막중한 임무를 맡은 그를 찾아갔다.    

강직해 보이는 첫인상. 그는 과거 자신 ‘문학 소년’이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때 철학과 문학을 좋아해 여러 책을 탐독했다. 예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과학기술을 공부해서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행복한 인생을 살기로 선택한 그는 연세대 대학원과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그가 걷기로 한 인생은 ‘출판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첫 직장으로 문학과지성사에 입사해 편집 주간을 거쳐 대표이사까지 지냈다. 2011년부터는 로도스출판사 대표로 일했으며 2014년부터는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 지금까지 그의 삶은 출판과 밀접하게 연결돼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또한 그를 ‘출판 전문가’라고 명명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사진= 이태구 기자>

-<독서신문>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셀럽(Celebrity)으로 선정되셨습니다.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독서와 출판 진흥을 책임지는 기관장으로서 <독서신문>의 독자 여러분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 우리 출판진흥원은 독자 여러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출판이라는 영역에 적극적인 주체로서 참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출판진흥원의 행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1970년부터 독서문화를 진흥해온 <독서신문>의 셀럽으로 선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독서문화 진흥이라는 공통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애쓰는 입장에서 서로 힘을 내야겠습니다.  

-출판 쪽 일을 계속하셨고, 문체부에서 ‘출판 전문가’라고 평했는데요. 조금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되지만, ‘출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저 스스로도 특별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고민하고 더 나은 답을 찾으려 하죠. 출판은 publication이라 부릅니다. 이 단어 안에는 ‘public(대중을 위한, 공공의)’이 들어있는데요. 이는 ‘private(개인 소유의, 사적인)’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겠죠. 즉, 출판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유를 최대한 정리하고 정제해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것, 그것을 출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냥 단순히 원고를 모아 종이책을 내는 일만을 출판이라고 좁게 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책 속에 담긴 콘텐츠입니다. 요즘 출판의 문맥에서 등장하는 콘텐츠는 실로 다양합니다. 많은 작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었던 글들을 다듬어서 책으로 내기도 하고, 동영상의 내용이 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만화나 영화에서 표현된 콘텐츠가 책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되었죠. 그러니까 거의 모든 우리의 창작 행위들은 결국 ‘출판’이라는 행위로 수렴됩니다. 책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가장 체계적이며 정제된 매체입니다. 적어도 이 점에 관한한 다른 어떤 매체도 책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전임 원장 문제도 있었고, 기자간담회에서 “출판진흥원은 다른 어떤 곳보다 생각의 자유를 옹호해야 할 기관”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도서 심의를 담당하는 기관의 장으로서 만약 본인과 다른 사상을 가진 출판물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확인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진흥원은 도서의 심의를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다. 간행물의 심의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심의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진흥원은 간행물윤리위원회 사무국을 둬 위원회의 사무적인 업무를 보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간행물의 심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과 청소년보호법에 의거해 이뤄지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폭력적, 선정적 매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내용으로 출판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사상과 다르다고 해 출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출판 위기의 본질은 콘텐츠를 생산·소비하는 행위와 출판에서 생산하는 책이란 매체가 만나는 데 실패했다는 것", "콘텐츠의 소비와 생산이 출판산업의 현장과 좀 더 만나게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출판산업의 미래, 책의 미래가 비관적이지 않다"라고 하셨는데요. 책이 독자들에게 다가갈 방법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저는 독자가 단순히 책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콘텐츠의 생산, 즉 출판 활동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출판정책에서 독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본적으로 ‘소비자로서의 독자’였습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점점 의미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읽는 사람 따로, 책을 쓰는 사람 따로 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텍스트를 왕성하게 생산하고 또 그 텍스트를 읽습니다. 독자는 단순히 책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책을 만들어내는 활동에 관여하거나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출판진흥원에서는 이제 독자들을 한편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으로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작가만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쓰는 일을 도울 것입니다. 출판진흥원은 앞으로 독자에게 좀 더 다가가 다양한 지원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겠습니다. 단순한 기획안으로부터 완성된 원고까지, 나아가 원고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컨설팅이나 교육까지, 우리 진흥원은 현재까지 박혀있던 틀을 벗어버리고 다양한 지원방안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로 인해 독자를 출판의 현장에 끌어들여 책을 함께 생산해내고 같이 고민하는 하나의 주체로 이끌어 독자와 생산자 사이의 벽을 허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 독서지원 활동과 출판지원 활동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 어떠한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하고 귀 기울이겠습니다.

<사진= 이태구 기자>

-임기 중에 중요시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음의 몇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두고 제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하려 합니다. 첫째는 ‘현장 중심’의 출판진흥원입니다. 공공기관이 책이 생산되는 현장과 떨어져 있으면 내실 있는 정책이 나오기 힘듭니다. 둘째는 ‘정책 중심’의 출판진흥원입니다. 이전의 출판진흥원이 다소 수동적인 자세로 정책의 집행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기관, 생각과 의지를 가진 기관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셋째는 ‘독자 중심’입니다. 책을 소비하는 독자들이 책을 읽는 현장으로 찾아가 아이디어와 생각을 들을 것입니다. 

-로도스 출판사 대표,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사를 지내시면서 지금까지 책을 많이 보셨을 텐데요. 책의 매력이라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출판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답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과 경험은 제한돼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과 경험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책이 아니면 제한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넘어갈 방법이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생활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것, 그것이 책입니다. 

-‘책 읽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책에 대한 좋은 경험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음악 같은 예술을 생각해봅시다. 어렸을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훈련을 받으면 평생의 자산이 됩니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 새롭게 음악을 배우려고 하면 굉장히 힘이 들죠.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들어 비로소 필요한 책들을 읽으려 하면 참 쉽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쓰는 훈련을 하면 그것이 평생 자산이 됩니다. 
독서 인구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통계를 보아도 그렇지만, 저 자신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요즘 학생들이 책을 잘 안 읽는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독서 교육 지원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출판진흥원의 정책을 이끌어나가겠습니다. 

-좋은 책 몇 권을 소개해주신다면… 

제 전공이 철학이고 플라톤의 철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그래서 양해해 주신다면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책을 추천하려 합니다. 그의 많은 저술들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향연』을 추천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사형 선고를 받아 법정 최후진술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의 삶에 담긴 철학이 매우 생생한 문장으로 표현돼있습니다. 『향연』은 아름다움의 본성을 논하는 여러 사람의 대화를 담았습니다. 다채롭고 상이한 대화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보통 철학이라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두 책 모두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족으로 혹시 인생 철학 같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김 원장은 “아직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모든 것이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는 만족스러운 답을 찾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그 자신과 ‘책 읽는 대한민국’ 위한 답을 찾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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