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우에노 지즈코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작가의 말] 우에노 지즈코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7.26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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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갈음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책은 1970년대 일본의 여성해방운동이 태동하고 약 반세기 동안 일어난 일본 여성의 변화를 논한 글입니다. 그 기간에 저는 20대에서 60대까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그때의 사건들 앞에서 분노하고 기뻐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한 관찰자나 연구자가 아니라 시대와 함께해온 동반자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반세기는 세계적으로 국제화와 신자유주의의 시대였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 휘몰아친 파도 앞에서 각 나라들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에 대응했습니다.

1970년대 한국은 군사정권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이 일어나고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함께 동서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에 한국은 급격한 국제화와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갔습니다. 시작이 늦었다고 변화마저 늦어지는 것은 아니듯 한국은 오히려 ‘압축근대’라 할 만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한 급격한 변화는 세대 간의 단절도 가져왔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매우 닮았습니다. 인구 추세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급속한 고령화와 극단적인 저출생률, 만혼과 비혼 현상 등이 그렇습니다. 또한 그 상황에 놓인 여성의 입장도 매우 유사합니다. 강력한 가부장제 하의 가족, 딸과 며느리의 낮은 지위, 주변화된 여성의 노동, UN의 남녀평등 지수에서도 다른 선진국과 달리 일본이 100위대로 순위가 떨어졌을 때 마치 어깨동무하듯이 한국의 남녀평등 지수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저의 책들이 벌써 여러 권 한국어로 번역된 까닭은 일본의 경험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공유하기 어려운 민감한 차이도 존재합니다. 한국에는 일본에 없는 징병제가 존재하고 이른바 ‘남자다움을 위한 학교’인 군대를 경험한 남자들이 ‘군사화된 남성성’을 익히면서 젠더 격차가 더 크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병역특권을 둘러싼 소송에서 보이듯이 남녀 사이의 대립이 더욱 첨예화하는 모습을 바다 건너에서 바라보며 놀라곤 했습니다. 그리고 패전으로 점령군에 의해 민주주의를 얻게 된 일본과는 달리 군사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획득해낸 한국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눈부시게 바라봤습니다. 여성 정책에서도 한국은 정부에 ‘여성가족부’를 설치하고 재빨리 성폭력 금지법을 재정하는 등 일본보다 한 발, 아니 두 발 앞서가고 있습니다.

모든 변화에는 그때까지 그 사회가 어떠한 경험을 해왔느냐에 따른 경로의존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일본 사회가 경험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날 개연성이 높고 당연히 그 반대의 상황도 일어나겠지요. 이 책은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주길 바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의 독자들이 신자유주의의 개혁의 결과 이토록 피해를 본 일본 여성들의 현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주길 바라는 책일 것입니다.


■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우에노 지즈코 지음|박미옥 옮김|챕터하우스 펴냄|368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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